내 옆에 와서 쉬어요, 내 다 들어드리리.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교무실에서도 여기저기 다른 사람 자리에 가서 수다 떠는 일이 좀처럼 없다. 해마다 학교일이 점점 더 많아져서 좀처럼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성격상 먼저 ‘일 없이’ 가지 못 한다.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거나 할 때만 간다. 특히 나의 사무공간이 아닌 다른 층의 교무실에 가면 더더욱 볼일만 딱 보고 오게 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책상 세 개가 네 벌씩 놓여있는 곳이다. 내 뒤로는 캐비넷(이라고 학교에서는 여전히 부른다.)이 있어 어수선한 내 책상이나 노트북 화면이 덜 부끄러운 편이다. 내 왼쪽에는 특별실을 가진 선생님 자리라 출퇴근 시간에만 자리에 오시고, 내 오른편에는 일주일에 한 번 우리 학교에 순회하는 선생님 자리라 내 옆 자리는 거의 비어 있다. 덕분에 그분들 책상까지 내 서류나 책이 침범할 때가 많다. 내 전용 전화기는 늘 왼쪽 선생님 자리에 가 있고, 수업에 쓰는 소설 28권은 상자 채 오른쪽 책상 위에 이 주일째 놓여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순회 선생님이 오실 때마다 내 책상은 더더욱 꽉 찬다.
책상만 쓰는 게 아니다. 내 양 옆엔 의자도 있는 것이다. 내게 볼 일이 있어 오는 학생을 앉혀놓고 대화도 하고, 과제도 봐주고 할 때 쓴다. 교무실에는 학년별로 상담용 탁자와 의자가 있지만, 아무래도 거기에서는 학생부 선생님과의 심각한 사안이 주로 다뤄진다.
처음에 학생들은 여기에 앉아도 되냐며 쑥스러워한다. 선생님 의자에 앉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만 그렇다. 쑥스러운 얼굴로 앉아있다가 곧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며 의자를 회전시키기도 하고, 나보다 더 편한 자세로 앉아 내게 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귀여운 녀석들.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다른 자리가 아닌 내 옆자리에서, 이렇게 가까이 다가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학생의 경우에는 선생님과의 친밀감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혼자만의 바람일 수도 있다.
빈자리의 소중함을 나는 또 안다. 내게 볼 일 있어서 오시는 선생님들께 자리를 내어줄 때다. 부장님들이나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신규 선생님들. 사회초년생이란 얼마나 어려운 위치인지. 그들을 볼 때마다 나의 근무 첫 해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다른 선생님들 눈에 얼마나 어설프고 부족했을까. 그때는 몰랐다.
우리 부서의 신규 선생님이나 우리 학년의 신규 선생님이나 내 눈에 너무 이뻐 보이는 건 내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그런 예쁜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는 심각한 문제들로 나를 찾아오면 나는 마음을 다해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간절한 얼굴이 주는 힘이 있는가 보다. 듣고 나면 그렇게 심각할 게 아닌 일도 있고, 함께 인상을 쓰며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분들이 내 옆에 서서 말씀하시면 나도 함께 일어나서 얘기 나누게 되었는데, 그것은 ‘앉으세요’ 해도 그들이 그냥 서서 보고(?) 혹은 문의(?)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세가 왠지 그분들의 조심스러움 때문인 것 같아서 나도 따라 일어나거나 하던 일을 끊지 못해 간혹 앉은 채로,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린 채로 짧은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 이제와서는 무슨 일이든 선생님들이 내게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하면,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야 옆에 나란히 앉아 업무 이야기, 학생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왠지 서서 이야기할 때보다 한결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일단 나부터가 얼른 답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덜 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다 들어주고 싶으니까.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실종 아동 홈페이지에 대해, 학생의 집안 사정에 대해, 봉사활동 인정시간과 대기오염 대비 요령에 대해 이야기 나눈 사이가 되는 거다.
마스다 미리의 <걱정 마, 잘될 거야>에는 세 명의 마리코가 나온다. 직장 2년 차, 12년 차, 20년 차의 마리코들. 그들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고민하는 찰나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공감할 수 있었고, 직장에서의 나이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물론 아직 일한 지 20년도 안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저기 20년 차 아줌마 부장에 자꾸 이입이 되는 것이다. 젊은 동료 샘들 사이에 끼어 있을 때 왠지 어색함을 느끼고, 뭔가 꼰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내 심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다. 그래서인지 12년 차나 혹은 2년 차의 마리코에게 마음을 주고 싶다가도, 자꾸 이쪽으로 오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2년 차의 마음이나, 12년 차의 마음이나 모두가 고단하고 신경 쓸 일이 아주 많다.
나는 어떤 모습의 동료일까. 업무에 있어서 너무 흐리멍덩하지는 않은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날카로워야 할 지점에서 우유부단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이런 면이 누군가에게는 불만이 되어 쌓이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반성과 더불어 나는 그냥 언제든 내 옆의 빈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귀담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이만큼만 바라고 지내면 나 너무 작고 좁은가.
마리코들은 스페인 식당에서 적당히 가깝고 또 적절히 먼 선을 유지하며, 그러나 한껏 다정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귀 기울인다.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나도 저들도 충분히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관계. 그들의 식사 자리가 낯익으면서도 궁금하고 또 한 번 '우리들'도 뭉쳐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