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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 나는 <제인 에어>를 읽었다.

제인 에어에게 호명되는 즐거움

by 조이아

김민철 작가님 오독오독 북클럽 덕분에 <제인 에어>를 읽었다. 제인 에어라니. 그래, 제인 에어가 어떤 저택의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남자에게는 숨겨진 미친 아내가 있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더라? 중고등학생 때 다이제스트로 읽은 줄거리였을 거다. 한 번씩 영화화되는 제인 에어가 의아했다. 내게는 그저 고루해 보이는 옛날 소설이기만 했고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던 그 <제인 에어>를 내가 읽다니! 그것도 정말 재미나게!


앞부분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던 제인이 그보다 나을 것 없는 기숙학교에 가는 기구한 운명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만난 선배 헬렌과 선생님, 행실이 나쁘다는 오해를 받은 제인 이렇게 셋이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충만한 시간엔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고전 소설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인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인은 어른에게도 거침없이 말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한다. 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가정교사를 하겠다고 직접 신문에 광고를 내는 제인이라니. 도무지 두려울 게 없다는 식으로 인생을 대하는 제인에게 나는 반해버렸다.

또 다른 중요 인물, 로체스터와의 대화는 어떤가. 1847년 출간되었다는데 당시의 인물들이 이런 티키타카를 했다고? 샬럿 브론테는 둘의 대화를 통해 제인과 로체스터가 얼마나 동등한지를 보여주었다.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잉그램이 로체스터와 결혼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을 때, 제인은 그녀가 얼마나 로체스터와 맞지 않는지를 실감하며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로체스터를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는 주인공이 요즘 소설에도 있던가? 로체스터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제인이 하는 자신있는 밀당을 보는 재미가 좋았다.

우여곡절 끝에 제인이 다시 로체스터를 만난 것은 두 사람의 우위가 바뀌어 있을 때다. 제인은 존재를 알 수 없던 숙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았고, 우연히 만난 사촌들과 함께다. 로체스터는 정신이 이상해 숨겨두었던 아내를 화재로 잃고 그 사고로 실명하고 한쪽 팔을 잃은 상태다. 아내가 있는 로체스터와 결혼할 뻔했던 제인은 그가 집과 자신의 신체를 잃고 나자, 연민으로 아니 그보다 더 큰 사랑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로체스터의 하강은 아내를 살리려다가 얻은 사고라는 점에서 일종의 속죄가 된 셈이다. 신분 상으로는 동등하지 못했지만 둘의 대화는 처음부터 동등했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에게 꼭 맞는 상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이 새로이 부여한 지위 혹은 처지는 둘의 결합을 사회적으로 수락한다. 이런 결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독자들을 사로잡기도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기 때문에 <제인 에어>가 재미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해왔다. 이번에 읽으면서 이 두 사람 뭔데, 나 분명히 이 이야기 아는데, 하면서도 둘의 대화와 제인의 내면 심리를 바짝 눈을 붙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2권 뒷부분에서는 둘의 애정이 부럽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그의 앞에서 나는 완전히 살았고 내 앞에서 그도 완전히 살았다."

어쩜 이래. 다음은 어떤가, 사촌에게 밀월여행이 끝나고 만나자 했다는 제인의 말에 로체스터가 한 말이다.

"기다리면 너무 늦어. 우리의 밀월은 우리 일생 동안 빛날 것이고, 그 빛이 기우는 건 우리 둘이 무덤 속에 들어간 후가 될 테니까 말이야."

이런 달달한 소설이 바로 <제인 에어>라는 걸 혹시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쓴다. 이래서 몇 번이고 영화화되는가 보다. 샬럿 브론테는 1800년대를 살아간 작가이지만 그가 써둔 소설은 현대에 읽어도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필독서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제인의 서술 자체이다. 갈등과 번민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삶을 일구어나가는 단단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컸다.

서술자 제인은 번번이 ‘독자여‘하고 나를 불렀다.

“독자여, 나는 로체스터 씨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와 같은 문장. 나는 충실한 독자로서 그가 독자를 호명할 때마다 몇 번이고 ‘네, 알죠~’ 대답하며 그다음 문장으로 그다음으로 달려나갔다. 1권은 447쪽. 2권은 428쪽이나 되는 장편소설이지만 <제인 에어>가 장편이라서 기꺼이 안심하게 되는 마음을 아시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제인이라는 당찬 인물은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아났다. 읽기만 하면 주인공이 내 친구가 되는 소설을 김민철 작가님 덕분에 또 한 편 알게 되었다.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유종호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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