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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주름에 관심 갖는 타자로 존재하기, 독서 모임

저자 기르는 법, 독서모임에 끌리는 이유

by 조이아

여택 독서모임은 매달 오프라인으로도 만나고 일요일 아침엔 줌으로 같이 책을 읽는다. 늦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눈곱을 떼고 책상 앞에 앉아 화면을 켠다. 이달에 읽는 책은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마주하는 책이었다. 일요일 줌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통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아니 사실 책을 펼치기에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모임 직전에야 책을 읽는 버릇이 있는 나는 특히 더했다. 일요일 아침의 약속 덕분에 차근차근 읽고, 어제 모임을 앞두고는 나머지를 다 읽었다. 시집은 글자를 읽어도 읽었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운 법인데 철학과 시라니. 끝까지 다 읽었대도 내가 소화한 만큼이 너무 적다 느껴졌다. 다만 시하고 철학자의 사유를 연결해 시를 해석하고 철학을 설명해 내는 강신주 박사님은 정말 대단하구나 훌륭하신 분이다, 이것만은 확신했다. 이 책 덕분에 철학자들의 이름을 더 알게 되었고, 그들이 펼친 논리를 다 이해하진 못해도 개념, 아니 개념도 어렵고, 그들이 언급한 단어 하나씩은 접수할 수 있었다.

@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동녘 / @ 오케이 슬로울리에서

오프라인 모임이래 최다 인원이 모였다. 열 명이 같은 책을 갖고 만나는 게 새삼스레 신기했다. 처음 나온 분도 계셨는데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하물며 이렇게 어렵고 두꺼운 책을 들고서야. 좋았던 부분을 나누었다. 시를 읽고, 철학 얘기를 덧붙이고, 저마다 이야기 하나씩을 보탰다. 시인 이름, 철학자 이름이 두서없이 나오는 대화였으나 우리들의 이야기는 굽이굽이 돌아 다시 철학으로 삶으로 잇닿았다.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문‘이라는 메타포에 대해 떠올리게 했으며 문을 영감의 원천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안에서 열리는 문, 바깥에서 열리는 문이란 어떤 걸까 상상하게 했다. 정현종의 ‘섬’을 읽고 섬이 고향인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섬이 주는 정서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선생님이 밤, 논물이 찼을 때의 개구리 소리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황새가 날아내려 오면 그 시끄럽던 개구리들이 조용해졌다는 얘기가 놀라웠다. 동물들의 본능에 대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 한자리에 모였나 생각했다. 이 마음은 본능일까 아닐까. 더 나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 혹은 오늘 만나는 이들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거라는 믿음이 우릴 이 자리에 있게 한 건 아닐까.

이번에 알게 된 철학자 들뢰즈로부터 리좀(rhizome, 뿌리줄기), 아장스망(agencement), 주름과 같은 단어들을 얻었다. 내가 이해한 만큼만 써보자면 이렇다. 우리는 무엇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변한다. 그 흔적들을 주름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주름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흔적인 셈.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그에게 왜 이런 주름이 생겼을까 궁금해한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그 주름을 펼쳐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관계를 맺은 이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주름을 만들 수 있으리라. 독서모임으로 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연결하기 마련이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서로의 주름을 펼치는 때가 아닐까. 그의 흔적을 이해하고 삶을 나누는 과정이 바로 독서모임인 것 같다. 그럴 때 우리는 의미 있는 타자가 되며 같은 결의 주름을 얻는다.


모임에서 좋았던 부분에 대해 나눌 때, 나는 철학도 시도 잘 모르면서 읽었다고 고백하며 그저 좋았던 시 한 편을 읽었다.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잃고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가


사람들이 저마다 달고 다니는 몸이

이윽고 길임을 알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기쁨이여


김준태의 <길 - 밭에 가서 다시 일어서기 1> 일부“

그 자리에서 고백하진 못했지만, 우리 모임 한 분 한 분이 길을 열어주시는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연극, 뮤지컬을 소개해주는 선생님이 계시고, 그림책과 철학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선생님도 계신다. 좋은 공연을 소개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독립영화를 소개해주시는 분도 계신다. (나는 옆에서 같이 글 쓰자고 조르는 일을 한다.) 내 세상밖에 모르고 사는 각자가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넓혀가는 세계, 그게 독서 모임이구나.


우리의 공통점은 대전시 중고등학교 교사이자 어느 방학에 ‘책쓰기 연수‘를 들었던 수강자라는 점. 연수 후속 모임으로 독서모임에 참가하겠다고 손 들었던 사람들. 단톡방엔 늘 20명 이상이 있으나 매달 만나는 이들은 7명 정도였다. 어제의 열 명 모두가 자발적으로 한 공간에 모였다는 게 새로이 감사하다. 고흐전에 다녀오셨다며 책갈피를 선물하는 마음, 맛난 빵을 나누는 넉넉함, 공연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하는 설렘, 마주하며 활짝 웃는 얼굴들.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같이 읽자고 한마음으로 하는 고백들, 우리들은 어떤 길로 이어질까, 지속되는 호기심이자 열정이고 싶은 마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주름이 기대된다. 어제의 온기가 휘발되지 않길 바라며 쓴다.


@ 버찌책방에서 우리가 고른 책들, 서점에서 하는 독서모임이 주는 충만한 기운도 어제의 온기에 한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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