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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실패하는 시기

by 조이아

소설 쓰고 싶다, 품어온 소망을 실천하려고 한 발을 내디뎠다. 김이설 작가님의 수업 '소설 쓰는 밤'을 신청한 것이다. 소망은 소망으로 두었을 때가 뿌듯한 걸까? 신청하면서도 과연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두려웠고, 만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내가 신청해도 되었던 걸까, 창피만 당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의지가 녹아내렸다.

만남 전날 단톡방이 개설되었고, 강의 계획이며 과제며 읽기 자료가 올라왔다. 또 한 번 걱정의 쓰나미가 몰려왔지만 기대하는 마음도 올라갔다. 이렇게 체계적인 단계를 거친다면,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뭐라도 쓰겠지 하는 기대였다.


소설 입문반의 첫날. 두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을까 싶게 자극이 몰려왔고 수첩을 끄적였다. 소설과의 첫 만남 아닌 첫 만남 같은 시간이라고나 할까. 작가님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내가 써나갈 과제들이 훅훅 밀려왔다. 구체적이고 다정한 예시들 덕분에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시간을 마무리할 때쯤 작가님의 말씀.

"지금은 실패하는 시기예요."

듣자마자 놀랐다. 언제 이런 얘길 들어본 적이 있던가? 중년의 나이, 다양한 배움을 이어왔지만 첫 수업에 이렇게 말씀해 주신 선생님은 안 계셨다. 수영을 할 때도 불어를 배울 때에도. (아, 새로이 배운 게 너무 없다는 것도 새로 알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잘해야 한다고만 들었지, 실패해도 된다는 얘긴 처음이다. 듣자마자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처음이니까 잘 못하는 게 당연하다. 바로 잘하면 다음번에 늘지를 않는다. 실패해야 그다음, 그다음의 발전이 있다.'를 이어서 말씀해 주셨는데, 얼마나 와닿던지.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은 분명 들어본 말인데도, 막상 무엇인가를 처음 시도할 때 이 얘길 들으니 큰 힘이 되었다. 실패의 가치에 대해 처음 듣는 기분이었다.


나도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지금은 실패하는 때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늘 성공의 가치만을 중시하는 학교 현실에서 어떤 분야에 대해 이런 얘길 할 수 있나. 실패가 있어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문장을 조금씩 변형해 보았다.

'오늘은 상점 받기에 실패하는 날이야.'

'지금은 우정에 실패하는 때였나 봐.'

'지금은 사랑에 실패하는 시기야. 다음엔 다를 거야.'

이 정도? 일 년 간의 동아리 활동을 돌아보며, 글 쓰는 시간에 이런 얘길 할 수도 있겠다. 오늘 한 편의 글을 완성하라는 압박 대신에, 이번에 못 써도 된다며

"오늘은 실패하는 때인 거야. 우리에겐 다음이 있으니까."

이런 얘길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이다.


실패에 대해 말해도 커다란 응원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신 김이설 작가님께 반한 밤, 난생처음으로 실패를 꿈꾸게 된다. 더 나아질 내일이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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