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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한 삶에 온기의 틈 벌리기

<깨끗하고 밝은 곳>,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재능

by 조이아

사람을 움직이려면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는데 시험도 끝나고 고입 원서도 쓴 마당에 아이들 영혼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경우가 많다. 지난 일주일 학교에서 좋았던 순간이 있다면 소설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직접 읽어주었는데, 그렇게 읽은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은 여러 번 읽으면서 더 좋아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한 잔 하는 노인을 바라보는 두 웨이터의 대화. 삶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나이 탓일까, 성정에서 기인할까.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짧은 소설을 중학생들과 나누었다. 아직은 허무가 와닿지 않을 그들이지만 우리 삶에는 다양한 생각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내게 남은 메시지는 인생의 허무를 아는 인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작은 친절. 우리네 삶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타인을 위한 마음 아닐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난주 내가 받은 호의를 떠올린다. 선배 선생님 시골집으로의 초대. 미소가 둥둥 떠다녔고, 마음이 넉넉해졌다. 어느 한 군데 정성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던 그곳에서의 쉼. 생각을 멈추고 하늘멍을 할 수 있었다. 겨울 나무 뒤로 노을 지는 모습 바라보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마음에 담기. 선배님은 이곳이 바쁜 일상의 탈출구 같은 곳이라고 하셨다. 늘 자애로운 모습이셔서 그 까닭이 궁금했는데, 자신만의 은밀한 기쁨을 갖고 계셔서 여유로우셨구나 다시 알았다. 그 소중한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시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선배님. 번거로운 일일지라도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내어주고자 하는 그 마음이 감사했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의 발현은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당신에게 충분한 쉼이 되는 공간을 선뜻 내어주신 것, 소설 속 나이 든 웨이터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을 보며 자기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고 느끼는 것 또한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 덕분이리라.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따스하게 바라보며, 삶의 먹먹함에 온기의 틈을 넣어 힘써 벌리는 일을 이분들은 한다.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방향, 쓰고 싶은 글도 이런 것일 테다. 가만히 있으면 어느새 짙게 내려앉고 마는 허무를 조금이라도 옅게 만드는 일.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일 또한 재능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런 천재들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정갈해지고, 시골집에서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실 수 있었다. 삶이 조금 더 살만해지는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수집해 나가고 싶다.

우리 중학생들 가운데 딱 한 명이 수업 끝나고 내게 와 물었다. 아까 그 소설 어떤 출판사에서 나왔어요? 민음사에서 귀여운 책으로 나와있어. 기쁨을 발견하는, 재능 있는 학생임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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