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말의 단상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저 시가 생각나는 때가 없었다. 내 멋대로 내용을 변형해서 말이다.
'학생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부모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28명의 담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최근엔 보호자까지 56명의 담당처럼 느껴진다.
출결 서류가 온라인으로 바뀐 이후, 보호자와의 연락이 잦아졌다. 결석 신고 방법을 안내하거나, 현장체험학습 신청 방법 혹은 보고서 작성에 대해 알려드리기 위함이다. 학년말이고 독감이 유행했으며,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학교에 안 오는 학생들이 꽤 있기에 담임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거리가 많아졌다. 종이로 받고 철해두었던 것을 온라인으로 실시하니, 신청 기한이며 보고서 기한에 민감해졌으며 내용상의 오류가 있다면 촉박한 일정으로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만의 일일 것이나, 여러 명의 담임으로서는 여간 바쁘지 않았다. 학생 말고 학부모에게 안내하는 일에는 조심스러움이 따르기 마련이라 골치가 아팠다. 내게 당도하는 메시지를 받을 때 당혹스러울 때가 꽤 있었다.
한창 특성화고등학교며 자율형 사립학교의 자기소개서를 들여다보던 때였다. 우리 반 아이들 것을 챙겼고, 틈틈이 그 내용을 바탕으로 면접처럼 질문도 던졌다. 학교마다 다른 원서 작성이며 생활기록부 등의 서류를 챙기던 어느 날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데, 다른 반 아이가 내게 종이를 내민다.
"이거요."
"이게 뭐야?"
"엄마가 이거 국어 선생님한테 맞춤법이랑 띄어쓰기 봐달래요."
어느 학교에 지원하고자 하는데, 자기소개서를 써보았으니 한번 봐달라든가, 선생님 조언이 필요하다든가 했다면 어땠을까. 나를 맞춤법 검사기로 생각하는 걸까? 그것도 보호자가? 우리 반 애들 거 보기에도 바쁘다며 거절하고 말았다.
학생들은 자라고 성장하는 중이라 예의범절이 미흡해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보호자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언행에 의아하곤 한다. 교사를 그저 출결 처리하는 사람, 맞춤법 봐주는 사람으로만 보지는 않겠지만 교사 또한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AI 교사처럼 대해야 하는 걸까, 그래야 내가 상처를 덜 받나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NPC는 N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게임 속에서 자동화된 행동을 수행하는 캐릭터다. 플레이어가 어떻게 행동해도 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캐릭터. 실제 세계에서 그런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교사로서의 나는 NPC도 아니면서 일단은 해야 할 일을 하기는 한다. NPC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발행해도 될까 고민하면서 쓰고 있다. 민원은 무섭다.
학년말이면 교사는 학교생활기록부며 업무 정리로 정신없이 바쁘다. 그 와중에 학생들은 이런저런 행동으로 교사와의 정을 떼고자 하지만. 지난주에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 세 통이 있어서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따듯했다. 학년이 끝나가는 마당에도 아이 잘 지도하겠다고 손편지를 보내주신 어머니도 계셨고, 장문의 메시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신 분도 계셨다. 나도 나대로 우리 반 아이들과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도 NPC라면 불가능하겠지. 마음을 가진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대하고 각자를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아직 사람에게 배우는 세계라 얼마나 다행인가. 그게 학교가 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지는 일. 가장 어려운 과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