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고독으로 내 힘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 일본의 다이다이 서점 운영자 다지리 히사코가 쓴 에세이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저자가 어린 시절, 쥘 르나르의 <홍당무>를 즐겨 읽었단 얘기가 나온다. 엄마에게 미움받는 아이의 이야기를 즐겨 읽는 자신이 어두운 사람인가 의심하던 때가 있었단다.
"지금은 어린 시절에 느꼈던, 사람들 속에 있을 때의 고독감을 홍당무와 나눠 가졌던 것임을 안다. 고독이라고 해도 딱히 학대를 당한 것도, 미움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었다."
나만 남들과 다른 것 같다는 데에서 느끼는 불안은 자아가 생기면서 비롯된다. 그리고 청소년기는 그 불안을 꾹꾹 숨긴 채 지내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 노력의 얼굴들을 알고 있다.
임경선 작가님이 최근 펴낸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에도 '성장기의 얼룩'이란 장에 10대 시절 책에 파묻혀 지내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잔뜩 빌려가 읽던 저자를 기특해하던 사서 선생님들을 추억하며, 그들의 시선에 짠한 마음도 담겨 있었으리라 이제 돌이켜 본다는 내용이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10대 시절 마냥 행복했던 이들은 훗날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
헉, 제 얘기하신 건가요? 중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난다. 맨 앞자리에 앉아 바로 앞에 보이던 학급문고에서 이런저런 책을 꺼내어 펼쳐 읽던 내가. 눈이 예쁘던 날라리(?) 친구가 언젠가 내 옆에서 물었더랬다.
"너 친구 없지?"
위협하려는 말도 불쾌감을 주려던 말도 아니었지만 잊히지 않는 말이다. 지금도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라서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이 흔치 않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의 적극성에 갑자기 고마워진다.) 그 외롭던 시간들이 지금의 쓰는 나를 만들었겠거니 한다.
중학생, 상당히 애매한 시기다. 자신의 어설픔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며, 남들과 다르고 싶으면서도 별나 보이는 게 싫은 모순 덩어리. 홍당무의 표정이란 게 있다면, 나는 그 얼굴을 잘 알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표정으로 지내지만, 겁먹은 아이, 외롭고 슬픈 아이가 그 안에 숨어 있다. 그걸 꽁꽁 숨기려는 애씀이 내게는 너무 잘 보인다. 아이의 밝던 모습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아끼는 학생 하나가 대성통곡을 한 일이 있다. 친구들로부터 받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토로했다. 그동안 얼마나 꾹꾹 눌러왔을까 나는 아이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못되게 구는 아이들, 그 문화를 바꾸지 못한 데에서 오는 무력감과 그 분위기를 그냥 받아들인 채 지내고 있는 미안함이었다. 또래문화라고 하는 것이 점점 더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했다. 자기 일이 아니면 무관심하고 양심이 있을까 싶게 거짓말도 횡행한다.
내 눈엔 이쁜데 친구들로부터 인정 못 받는 아이, 똘똘한 학생인데 기를 못 펴고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자꾸만 그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언젠가는 굳건히 설 아이들임이 분명하지만, 이들이 잠시라도 책과 글에 기대 수 있다면 좋겠다. 책은 현실을 잊게 하기도 하니까. 또한 책은 자기 생각을 굳건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며, 마음과 생각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도구다. 더 나아가 글을 쓴다면 자기 경험을 들여다보며 성찰하고 자기 돌봄 및 치유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쓰면서 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해야 할 것 같다. 읽고 쓰며 어떤 식으로든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자.
2025년 독토리 아이들과 만든 책은 <TALK TALK 대화의 맥박>이란 제목이다. 아이들이 자신과의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 타인과 교류하며 세상과 화해 혹은 투쟁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학교를 떠날 때가 왔다. 내가 없어도 독토리가 책 만드는 일을 이어나가길 바라며. 나는 또 어디에서 누구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 다지리 히사코,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한정윤 옮김, 니라이카나이
@ 임경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토스트
@ 독토리, <TALK TALK 대화의 맥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