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달리기. 달리기에 대해서라면, 아무 감정이 없었다. 나와는 거리가 먼 무엇이었다. 초등학교 때 여섯 명이 출발선에 서서 달리고 나면 내 손등에는 늘 5라는 숫자가 찍혔다. '꼴찌를 할 수는 없어.' 그게 다였다.
중학교 3학년, 오래달리기 시간이란다. 친구들이 같이 뛰자고 했다. 나는 원래 달리기에 자신이 없으므로 그런 말은 꺼낼 엄두도 못 내는 편. 달리기가 시작되고 나는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우르르 단체로 출발한 틈에서, 그들에게는 있는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수월하게 선두로 나서는 그 둘. 같이 달리자는 말만 없었어도 이렇게 큰 배신감이 들지는 않았을 거다. 내 다리는 겨우겨우 움직였고, 겨우겨우 숨을 쉬며 운동장을 돌았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숨을 몰아내쉬느라 정신이 없었고, 친구들은 웃으면서 다가왔지만 나는 싸늘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뒤처진 건 당연했다. 한 명은 체육부장, 한 명은 정말 다리가 긴 친구. 나는 왜 같이 달리자는 그들의 제안에 너무 쉽게 '응'이라 말하며, 내 양손을 붙잡고 달려줄 것을 기대했을까.
학교 체육대회 때마다 교사와 학생이 같이 달리는 시간이 있다. 요즈음은 삼각달리기 정도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이벤트. 첫 학교, 중2 담임이었을 때였다. 우리 반 반장 녀석은 그 달리기에서 꼭 1등이 하고 싶었나 보다. 내 다리는 안 움직이는데 그런 나를 붙잡고 전력질주를 하던 녀석 덕분에 나는 그만 끌려 미끄러졌다. 손등이랑 팔꿈치만 까졌으니 다행이었을까. 너무나 미안해했는데, 나는 내 몸이 안 따라가 줘서 미안했다.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은 이런 나를 달라지게 했다. <마녀체력-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부제가 나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편집자로 살아오면서 운동부족, 저질체력으로 골골대던 저자는, 부부 모임으로 지리산을 갔다가 겪은 일을 계기로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지리산을 눈앞에 두고, 자신이 산에 오르는 일이 남에게 민폐가 될까 봐 오르지를 못한 것이다.(너무너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수영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탔다. 정말 대단한 것은, 조금씩 꾸준히 운동량을 늘리며 노력하던 그가 철인 3종 경기까지 도전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찾아 읽고 내 생활도 달라졌다. 운동의 필요성만 느낄 뿐, 실천하지 않던 내 몸이 움직이게 된 것이다.
달리기에 도전했다. 파리에서 돌아온 2018년 여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고, 요가 바지에 티셔츠를 하나 걸치고 이어폰을 꽂고 나갔다. 슬슬 걷다가 달렸다. 힘들어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 보이는 시간을 믿을 수 없어 동공이 흔들렸다. 고작 1분도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달리기보다는 걷는 시간이 더 많았다.
며칠에 걸쳐 비가 많이 내려서 내가 걷고 달리던 길이 사라졌다. 물이 차오른 것만이 아니라 정말 길이 뚝뚝 끊어졌다. 날이 마르고 길이 아니게 된 길로도 사람들은 걷곤 했지만, 운동하기로 한 내 마음은 길과 함께 끊어졌다. 나의 실천력은 딱 그만큼이었다.
겨울에야 길이 다시 복구되고 봄이 되어 길이 매끈해졌다. 복직과 함께 수영을 등록하고 4개월을 다녔다. 다시 여름이 오고, 나는 또 쫄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달리려고 나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 20분 정도를 슬슬 걷다 달리다 했다. 이른 아침, 여섯 시도 전에 나가 달리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어느 새벽에는 고라니를 만나기도 하고,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는 내 정신을 맑게 했다.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시작하는 하루는 개운했다. 저녁 무렵 달리기도 좋았다. 그렇게 하고 나면 그전 날과 다를 바 없었던 하루도 뿌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학기말 업무에 시달리면서는 날도 춥고 이른 아침이나 저녁 달리기를 할 기운도 안 났다. 그러다가 올해 2월, '런데이' 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미 코로나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겨울서점>에서 '요조'님이 채식 이야기, <아무튼, 떡볶이> 이야기와 함께 소개해준 앱이라며 친구 혜란이가 추천해주었다. 초보자에게 너무 좋은 어플이었다. 초보자 프로그램의 경우, 5분 걷기로 웜업을 한 다음, 1분 달리기, 2분 걷기, 1분 달리기, 2분 걷기 등 걷기와 달리기를 번갈아 하게 해주고, 달리기 시간을 점차 늘려준다. 게다가 달리기에 대한 정보도 전해준다. 무엇보다도 '잘하고 있습니다.', '30초 남았습니다.' 등의 격려가 나를 멈추지 않게 했다. 혼자 달리다 보면 내 마음속, 머릿속 작은 동요가 나를 멈추게 하는데 말이다.
코로나는 하루 걸러 하루씩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해가 반짝 나면 나도 덩달아 괜찮은 기분이었다가도, 흐린 하루는 기운이 빠지곤 하던 것이다. 달리기가 없었다면, 더 많은 날들이 무기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멀리 나갈 수는 없어도 마스크를 하고, 달리러 나가면 런데이의 성우 목소리가 나를 기운차게 했고, 좀 더 다른 하루를 만든 것 같았다. 장갑 없이 달리기를 해서 내 손등은 거칠어졌지만, 그게 또 영광의 상처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른 봄 낮에 햇빛을 받으며 달리기 하는 기분도 참 좋았다. 꽃들이 만개하면서부터는 한낮의 달리기는 피하게 되었다. 상춘객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저녁 무렵이 좋았다.
마음이 어수선하다가도 달리기를 시작하면 뭔가가 정리되는 기분이다. 어떤 고민들은 아래로 차악 가라앉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몸이 너무 피곤하다 싶을 때에도 달리기를 하면, 또 다른 뿌듯한 피로감이 나를 채운다. 달리기를 하면서 마주하는 풀과 꽃과 물, 하늘은 또 어찌나 기특하고 아름다운지. 해 뜰 때, 해질 무렵의 하늘 색깔이 이렇게 아름다운 지도 달리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파리의 센 강에서 달리기를 못 해 본 게 이제와 너무도 아쉽고, 지금이라도 집 앞에 바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과 천변이 있다는 게 너무도 감사하다.
이제 초보자 코스의 달리기는 두 개가 남았다. 지지난 번 달리기가 나에게는 고비였던 것 같다. 다리가 저린 기분이었고, 종아리 앞쪽 근육이 너무 아팠다. 그 코스를 한 번 더 달릴 때에도 두어 번 걷다가 다시 달렸는데, 그다음 20분 달리기는 오히려 수월했다. 오늘 25분 달리기에 도전하고, 그다음엔 30분 달리기에 도전! 이 프로그램이 끝나도 30분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고 싶다.
개학을 하고,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 다섯 명은 식구가 되었다. 코로나로 같은 교무실 사람들끼리만 지내며 전체 회의도 피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메뉴를 고민해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얼굴 보며 지내고 있다. 학생들 없이. 어느 정도 온라인 개학에 익숙해진 요즈음, 우리의 공통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런데이다. 모두가 런데이 어플을 받고 친구도 맺어서 누가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면 응원의 박수도 보낸다. 토요일 아침, 벌써 둘이 달리기를 했다. 아이들과 집 앞 산에 다녀온 나는 이따가 저녁때 해야지.
건강검진 때마다 운동부족이라는 말에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런 내가 동료들에게 달리기를 추천하다니 놀랍다. 아직도 달리기를 시작하면 곧장 호흡이 가빠지고 힘겹다. 그러다가도 계속 달리다 보면 숨은 편안해지고. 지난번에도 달릴 때 앞 종아리 근육이 아팠다.(ㅠㅠ근력은 언제 어디서 나오나.) 또 여전히 손발은 차갑고 늘 추위를 탄다. 그래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달리러 나가는 게 어디냐. 달리기라는 취미를 해가 넘도록 말하고 다닐 수 있음에 기쁘다. 쭈욱 가자. 철인 3종 경기는 못 나가도, 조만간 10km 달리기에는 도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