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 있다면 호텔을 가겠죠
오랜만이다. 별 세 개 반을 줄만한 에어비앤비 숙소에 왔다. 전남 구례 산골마을에서 칭따오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숙소 고르기는 늘 어렵다. 가뜩이나 결정질환(결정ㅈ애라는 말을 안 쓰려고 고안한 표현. 차별적 언어를 삼갑시다.)이 있는데다 대충 인터넷에서 사진만 보고 골랐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별 세 개 반은 꽤나 후한 평점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혀둔다. 오늘밤 묵는 곳은 전원주택 별채인데, 화장실이 밖에 있고 온수가 콸콸 안 나오긴 하지만 조명, 침구가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꿀잠을 잘 것 같다.
출장 준비를 할 때 숙소 예약은 임박해서 한다. 모바일 앱 3개 정도를 검색한다. 호텔스닷컴, 야놀자, 에어비앤비. 회사의 하룻밤 숙박비 상한선(10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웬만하면 호텔로 간다. 호텔이 가장 편해서다. 직원 친절도, 위생, 편의시설 등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곳이 호텔이다. 여러 높이의 넉넉한 베개와 침대 머리맡에 있는 조명도 내가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소도시도 아니고 작은 시골 동네로 출장을 자주 다닌다. 호텔이 있을 리 없다. 만만한 게 모텔이다. 한국의 모텔은 정말 위대하다. 없는 게 없다. 빈손으로 가도 걱정이 없다. 전국 모텔 대부분이 체크인할 때 칫솔, 치약, 면도기, 콘돔(왜죠?)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준다. 객실에는 남성용 화장품(여성용은 왜 없죠?)이 비치돼 있고 요즘은 스타일러와 안마의자까지 갖춘 곳도 있다. 소형 냉장고에는 어김없이 맥심 믹스커피 두 봉지와 동원 녹차 두 봉지, 삼다수 생수 두 병이 있다. TV도 대체로 큼직하고, 욕조를 갖춘 방도 많다. 요새는 무인텔도 많아서 누굴 마주칠 일도 없으니 코로나 시대의 완벽한 비대면 숙소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모텔을 가면서 설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모텔이니까. 아무리 4만~5만원으로 끝내주는 가성비를 자랑한다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쾌했던 기억이 없다. 금연 객실이라 해도 공기가 퀴퀴하고 분위기가 칙칙하다. 요상한 실내 인테리어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한테 모텔은 음식으로 치면 시리얼 같은 존재다. 살기 위해 먹는 사료처럼 살기 위해 자러 가는 곳.
마음에 드는 모텔을 찾았어도 에어비앤비를 꼭 한 번 검색해본다. 사실 에어비앤비는 성공 확률이 높은 편은 아니다. 어쩌면 모텔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지난주 강원도 모처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스타일의 에어비앤비 숙소는 최악에 가까운 곳이었다. 몇 가지만 열거해볼까. 천장등 위치, 의자 높이가 모두 불편했다. 화장실 세면대는 막힌 것처럼 물이 안 내려갔다. 간식이나 조식을 먹는 공용공간은 너무 지저분했다. 전자레인지에 오래된 거미줄이 붙어 있었고, 딸기잼 병에는 잼이 눌어붙어 있었다. 수세미도 너무 지저분해서 도무지 설거지를 하고픈 생각이 안 들었다. 최악은 베개였다. 손님이 목 부러지는 걸 보고 싶었던 걸까. 목례 자세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높이의 베개가 놓여 있었다. 그냥 수건을 돌돌 말아서 베개 대신 썼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도 이 지역의 '여행자 아지트'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소개 문구를 써뒀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최악의 후기를 남겨주려고 했는데 생각을 접었다. 함께한 아내가 호스트에게 사려 깊은 장문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본인이 복이 있다면, 알아서 개선하겠지.
물론 아주 만족했던 에어비앤비도 숙소도 있었다. 역시 강원도 모처에 있는 곳이다. 펜션스러운 숙소였는데 침대에 베개가 4개나 있었고 머리맡에 작은 스탠드도 있었다(호텔입니까?). 노트북 작업을 하기 좋은 책상도 있었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체크인 과정부터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는 것까지 아주 친절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자세로 게스트를 대했다(전직 호텔리어셨습니까?). 꿀잠을 잤을뿐더러 1박 2일 출장이 이 숙소 덕분에 행복했다. 그래서 이 숙소는 여러 지인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 무수히 생겨나고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가 이곳의 반만 따라가도 좋겠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는 많은 '꽝'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출장길에 챙기는 짐만 늘어난다. 캠핑 의자, 캠핑 조명, 블루투스 스피커, 휴대용 옷걸이 등등. 이럴 거면 캠핑을 하는 게 낫지 싶다.
어쨌거나 짐이 많아져도 할 수 없다.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만의 방편이니까. 오늘 이 글도 내 캠핑의자에 앉아 내 블루투스 스피커로 찰리 헤이든과 키스 자렛의 'Jasmine' 앨범을 들으며 썼다. 별 세 개 반짜리 에어비앤비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