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내와, 부모님과 문경 여행
서울서 나고 자랐지만 스스로를 호남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전남 출신이고 유독 애향심이 강한 아버지 영향이 컸다. 나에게도 전남 영암 시골집에 애착이 있다. 문제는 아버지가 타 지역에 대한 배타심까지 크다는 거였다. DJ 선생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영남 출신 대통령에 대한 저항감이 컸다. 사람에 대한 저항감은 그 지역에 대한 피해의식, 삐딱한 편견으로 작용했다. 나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경상도와 친해지기 쉽지 않았다. 대학 가서 영남 출신 동문 중 정치색이 조금만 보수적이면 선을 긋고 상종하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영남 출신 고참들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기자 일을 하면서였다(먹고사니즘의 힘이란). 경상도로 숱하게 취재를 다니면서 마음의 장벽이 조금씩 걷혔고 경상도 사투리도 익숙해졌다. 여러 지역 중에서도 찾아가면 괜히 마음 푸근해지는 도시도 생겼다. 바로 문경. 최근 1년 사이 취재를 포함해 세번 여행했다.
지난해 경상북도를 구석구석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경북 여러 도시를 차례대로 소개하는 연재물을 맡았었는데 문경은 느낌이 달랐다. 젊은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 시군별 평균 연령이나 인구 통계를 본 건 아니지만 감각적인 분위기의 카페와 식당이 유독 많았고, 문경새재처럼 묵은지 같은 관광지도 낡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유교 문화가 강고하고 보수적, 폐쇄적인 분위기의 다른 경북 내륙 지방과 비교됐다. 일하며 만나는 공무원이 지역의 인상을 좌우하는 경우가 흔한데 문경 공무원들은 친절하고 적극적이면서도 관료적인 느낌이 없었다. 답답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선했다.
그렇게 시청의 협조를 받아 문경새재 도립공원을 비롯해 구석구석 여행지를 취재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 두 가지만 꼽아볼까. 먼저 국내서 처음 경험해본 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강사는 “사람들이 단양을 많이 가지만 바람의 질이나 경치만큼은 문경이 한 수 위”라고 강조했다. 강사와 한 몸이 되어 날아올랐다. 웅장한 백두대간 산세와 누렇게 익은 황금들녘이 그림 한 폭처럼 눈에 담겼다. 보통 체험은 15분이면 끝난다. 그러나 취재 중이었기에 우리의 강사님은 하강할 생각을 안 했다. 이렇게 빙빙 돌면 더 멋진 영상이 나옵니다, 저 산 봉우리 쪽으로 접근해보죠. 끝없이 도는 패러글라이딩에서 내 머리도 돌아버렸다. 나미의 빙글빙글, 들국화의 돌고돌고돌고가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면 안 될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잔디밭에 철퍼덕 착지하니 금세 멀미기가 가셨다. 어쨌거나 맨몸 비행 체험은 짜릿했다.
문경에는 걷기 좋은 길이 정말 많다. 맨발로 흙길을 걸을 수 있는 문경새재도 좋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고모산성’이었다. 전국의 고모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산성은 아니고, 고모산에 있는 산성이다. 바로 옆에는 음식 이름 같은 ‘진남교반’ 유원지가 있는데 1933년 대구일보가 경북 팔경 중 1경으로 꼽은 곳이다. 고모산성과 진남교반은 한국관광공사의 비대면 관광지 100선, 그러니까 코로나 시대에 안심하고 갈 만한 관광지로 꼽히기도 했다. 가보니 정말 그렇더라. 사람 마주칠 일이 없었다. 돌계단을 걸어 오르면 문경 어디서도 보기 힘든 절경이 펼쳐지는데 오후 6시, 조명이 들어오면 더 그윽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다른 곳은 몰라도 100곳 중 이곳만은 정말 잘 뽑았다 싶었다. 한국관광공사, 칭찬해!
출장 때 기억이 좋았던 터라 올초 겨울 휴가로 아내와 함께 문경을 또 찾았다. 일정은 3박 4일. 대야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루를 자고 나머지 두 밤은 가은읍에 있는 민박에서 묵었다. 휴양림 일정만 추가했을 뿐 출장 때와 비슷한 코스로 여행했다. 괜찮았던 식당과 카페를 다시 찾아갔고 고모산성을 다시 걸었다. 아내도 문경이 퍽 맘에 든 눈치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5월 장모님 칠순 기념 여행도 문경으로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 때문에 대가족이 함께 여행할 순 없었다. 처형, 처제 가족을 대신해 우리 부부가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칠순 여행은 겨울 휴가 코스와 비슷했다. 너무 심한 돌려 막기인가? 코로나 유행이 극심했던 시기여서 이 코스가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휴양림에서 자고 모노레일을 타고 고모산성을 걷는 느슨한 일정을 짰다. 굳이 휴양림을 또 찾은 이유가 있다. 대야산 휴양림은 산림청이 운영하는 국립 휴양림 중에서도 5성급으로 통한다. 숙소 대부분을 새로 지었고 자연환경도 좋아 엄청난 인기를 구가 중이다. 어렵게 방을 잡고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칠순 여행인데 5성급 휴양림이 아니라 5성급 호텔로 모셨어야 했나.
5월치고는 조금 더운 날씨였는데 모노레일 타고 단산 정상에 오르니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장인 장모님은 하트 모양을 그리며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으셨다. 간이역 카페로 활용해 유명한 가은역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고모산성을 찾았다. 그렇다. 최근 세번의 여행에서 빼놓지 않은 우리의 고모산성.
무릎이 불편하신 어머니는 산성 아래쪽에서 기다리셨고 아버지와 나만 높이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 정도면 산책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는 숨이 가빠 보였다. 자식 걱정시키는 걸 죄악시하는 어머니는 계속 괜찮다,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기운이 없는 걸 숨길 순 없었다.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 아내도 예민해졌다. 칠순여행의 주인공이 어머니인데 더 어머니를 배려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냥 널찍한 리조트에서 늘어지게 쉬는 게 나았으려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쨌거나 고모산성은 변함없이 한가했고 여전히 근사했다. 국보나 보물도 아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아니지만 주변 산세와 굽이도는 영강과 어우러진 모습이 멋드러졌다.
저녁을 먹고 휴양림에 돌아오자마자 장인 장모님은 드르렁드르렁 코골며 주무셨다. 이튿날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칠순 기념 여행인데 날씨가 협조를 해주지 않다니 안타까웠다. 그 좋다는 휴양림 명품 탐방로를 산책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만 우산 쓰고 숙소 주변을 걸었다. 길섶에서 아주 작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 그걸 챙겨서 어머니께 건네드렸다. 너무 작은 잎이어서 뭉개져 버렸다. ‘그냥 버릴까요?’ 물었더니 어머니는 ‘아니, 이리 줘’ 하시더니 클로버를 삼키셨다. 헉, 내 동공이 확장된 걸 보신 어머니는 그냥 멋쩍게 웃으셨다.
장모님은 무슨 생각으로 클로버를 드셨을까, 문경 여행이 즐거우셨을까, 나처럼 고모산성이 좋으셨을까, 칠순이 되신 소감은 어떠신가, 나는 질문하지 못했다. 휴양림을 나와 메기매운탕을 사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가을에 접어드니 다시 문경을 가야 할 것 같다. 문경만 생각하면 고적한 고모산성과 어머니가 네잎 클로버를 삼키셨던 순간이 떠오른다. 문득 경상도 쪽으로는 얼씬도 안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가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