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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Aug 19. 2021

발리, 하와이 부럽지 않은 고흥의 석양

봐도 봐도 지겹지 않은 바다 또 바다

보성에서 사흘을 지낸 뒤 이웃 동네인 고흥으로 넘어갔다. 고흥 역시 처음이었지만 이름만큼은 친숙했다. 어릴 적 명절 때마다 시골(전남 영암)을 내려가면 마을을 돌며 육촌, 팔촌 집에도 인사를 다녔는데 가까이 사시는 ‘공아짐’도 꼭 찾아 뵀다. “아야, 공아짐한테 다녀왔냐?”는 말을 아버지와 큰아버지들은 명절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셨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공아짐은 고흥에서 영암으로 시집온 칠촌, 팔촌 뻘 어른이었다. 그러니까 ‘고흥 아짐(아줌마)’, ‘고흥 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름으로만 듣던 고흥 땅을 처음으로 밟게 됐다.  


‘참 멀구먼.’

바로 옆동네인 보성에서 고흥으로 넘어갔는데도 아주  지방처럼 느껴졌다. 길거리에도, 민박집 마당에도 심겨 있던 야자수 때문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긴 것도 서울과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고흥에서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관광명소를 둘러볼 생각도 없었고 맛집 뽀개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나, 소박한 목표가 있었으니  없이 바다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고흥은 반도이230 섬을 거느린 바다의 고장이다. 물론 207개는 무인도지만 여러 섬들이 다리로 연결돼 있어 이동하기 편하고 섬마다  알려지지 않은 예쁜 해변도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처음 달려간 곳은 거금도에 있는 연소해수욕장이었다. 고흥군청 홈페이지를 본 것도 누가 추천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도 앱을 보고 찾아갔다. 송림이 해변을 감싼  아담한 만이었다. 우리 말고는 딱 한 가족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들도 금방 자리를 떴다. 물이 탁하고 백사장 한쪽에 폐어구가 조금 있고 모래가 다소 거칠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바다를 전세 낸 듯한 경험은 난생처음이었으니까. 나는 원 없이 수영을 하고 아내는 백사장에서 돗자리 깔고 망중한을 즐겼다.

해수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거금도와 소록도를 잇는 거금대교 앞에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났다. 거대한 산불이 난 듯 바다 건너 섬 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은 뭍에서 보지 못한 장관이었다.

“와! 발리 하늘이다!”

아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확산 전, 마지막 해외여행으로 갔던 발리에서 날마다 그림 같은 석양을 봤는데 그에 못지않은 풍광을 고흥에서 마주친 거다. 거금대교 앞에서 한참 동안 그림 같은 하늘을 바라봤다. 소록도를 거쳐 소록대교를 건널 때까지도 황홀한 낙조가 펼쳐졌다. 불현듯 공아짐이 떠올랐다. 아짐, 참 멋진 곳에 사셨었군요.


다음날은 남열해돋이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영남면 남열리에 있는 제법  바다인데 언제가부터 해맞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해수욕장 이름을 저렇게 만든  같다. 어쨌거나 요즘  뜨는 바다다. 남해에서 흔치 않은 서핑 해변으로 소문이 나면서다. 서핑을  계획은 없었다.   정도 입문 교육만 받고 꾸준히 연습을   탓에 생초보나 다름없었고, 생초보는 새로 배울 때마다 체력만 쭉쭉 빠진다는  알았기 때문이다.


면 소재지에서 반찬 12가지로 구성된 7000원짜리 감동 백반을 사 먹고 해변으로 갔다. 제법 사람이 있어 보였지만 피서철 동해안에 비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인기 해수욕장답게 파라솔과 튜브를 빌려주는 상인들도 보였다. 튜브를 빌려서 놀까 하다가 쨍한 볕을 쬐며 태닝하는 데 집중했다. 너무 뜨겁지 않은 햇볕이어서 좋았고 산들바람도 불어서 좋았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은 해돋이를 못 봐도, 서핑을 안 해도 괜찮은 바다였다.  


 정도면  없이 바다를 즐긴  같았지만 우리는  바다를 찾아갔다. 어제처럼 그림 같은 석양을    있을  같은 예감이 . 남열해수욕장과는  반대편, 고흥반도 서쪽에 있는 풍류해수욕장이 목적지였다. 내비게이션도 길을 헤매는 외진 마을 한귀퉁이의 작은 해변이었다. 풍류해수욕장 역시 썰렁했다. 차를 세워두고 피크닉을 즐기는 몇몇 가족이 보이는 정도였다.

마침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어제 거금대교에서 본 석양과는 또 다른 그림 한 폭이 펼쳐졌다. 빨갛게 물든 구름이 회오리 모양으로 하늘을 휘감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왔다.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는 기특한 녀석이구나 싶었는데 아예 벌러덩 누워서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함께 보랏빛, 핑크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감상했다. 녀석도 이날 낙조가 특별하다고 느꼈나 보다.

고흥을 돌아다니며 차에서 줄곧 들은 음악이 있었다. 하와이에서 음악을 배워 정통 하와이 음악을 국내에 소개한 가수 ‘케코아’의 음악이었다. 그가 부른 하와이 원주민 민요부터 ‘하와이안 선셋’이란 노래는 고흥의 풍광과 찰떡궁합이었다. 특히 낙조를 보며 드라이브할 때는 마치 하와이로 순간 이동한 기분까지 들었다. 단지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음악이라는 느낌 이상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뭔가가 있었다. 고흥이라는 이국적인 공간, 쨍한 바다, 완벽한 날씨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켰나보다. 하와이나 발리 같은 열대 휴양지에서 느낄 수 있는 ‘섬머 바이브(Summer vibes)’란 것도 결국 이런 것들의 총합이 아닐까 싶다. 내 기억 속에서 고흥은 발리, 하와이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위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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