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 안 만들기' 경쟁을 해보면 어떨까
원주, 파주, 예산, 하동, 거창, 상주, 순창... 일단 생각나는 도시를 열거해봤다. 출렁다리가 있는 동네들이다. 실제로 한국에 출렁다리는 몇 개나 될까. 행정안전부는 2020년 6월 전국 출렁다리가 171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0년 이후 출렁다리 건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건 출렁다리만이 아니다. 다리 비스무리한 전망대 스카이워크, 강변이나 절벽에 나무데크를 깔아놓은 각종 탐방로 외에도 잔교, 부교 등등이 모두 출렁다리의 사촌뻘이다. 지방 출장을 갈 때면 지역을 막론하고 이런 식의 토목 공사형 관광개발사업을 목격한다. 이미 완성된 곳도 많고 공사 중이거나 추진 중인 곳도 많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환경 문제는 차치하고, 아꼈던 지역이 판박이 하드웨어로 개성을 잃는 게 안타깝다.
왜 신문기사처럼 심각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바로 엊그제 강원도 동해에서 그 현장을 보고 와서다. 묵호등대로 유명한 '논골마을'에 80억원을 들인 신흥 관광명소가 생겼다고 떠들썩했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라는 전망대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사투리다. '밸리'라는 표현으로 기존 전망대나 스카이워크와 차별화를 시도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딱히 색다른 건 없다. 59m(590m가 아니다) 높이 전망대에서 발아래 골짜기와 멀리 바다를 조망한다. 하늘 위를 달리는 자전거, 원통 슬라이드 같은 체험시설도 있는데 테마파크와 동네 놀이터의 중간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바다 쪽에도 길이 85m짜리 해랑전망대를 걸 만들었다. 바다 쪽으로 빼죽 나와있는 다리다. "전망대는 도깨비방망이를 형상화했으며, 바다와 태양 그리고 내가 함께하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안내판에 씌어있었다. 전망대 없어도 해변에서는 누구나 바다와 태양, 내가 함께하는 거 아닌가? 동해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동해시만의 힐링·감성 관광과 더불어 체류형 복합체험 특화관광지로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좋은 말 총집합니다.
너무 까칠한 거 아닌가 싶지만, 기존에 동해를 여러 번 가본 사람으로서 스카이밸리의 등장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기존 묵호항과 논골마을의 정취가 단박에 사라져버렸다. 사람 냄새나는 마을과 인공적인 전망대는 환할 때 봐도 이질감이 심한데 밤엔 더 가관이다. 눈이 어질어질한 오색찬란한 조명이 은은한 항구마을의 매력을 집어삼켰다. 주변 식당이나 카페들은 매상이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멀리 내다봐서 동해시에 유익한 선택이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이걸 두번, 세번 보기 위해 찾아올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비슷한 관광지가 전국 어디에나 있으니 시한부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을테다. 계절마다 생각나는 진미나 마음씨 좋았던 숙소 주인 때문에 또 찾아가는 장소가 있을 순 있어도 인공 랜드마크는 진한 추억으로 각인되기 어렵다.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 얼마 전 강원도 모 도시의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몇 년 전 이 도시에 출렁다리가 들어섰다. 개장 후 출렁다리가 끊어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그러나 인기는 하룻밤 꿈같았다. 이후 전국 각지에 '최장' 기록을 깨는 녀석들이 아이돌 가수처럼 연거푸 등장하면서 이 출렁다리는 초라해졌다. 불과 2년여만에. 지금 제일 긴 출렁다리는 길이가 400m가 넘는다. 공무원의 푸념은 영화 대사 같았다.
"그때 그 인기가 영원할 줄 알았죠."
그러면 이 도시가 토목공사식 관광명소 조성을 반성하고 색다른 접근을 시도하느냐, 하면 그건 오산이다. 출렁다리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케이블카를 만든단다. 지금 전국 지자체가 출렁다리와 함께 목매고 있는 사업이 케이블카다. 전국의 산과 강, 바다마다 다리와 곤돌라가 출렁거리고 있다. 마치 뉴욕 맨해튼에서 빌딩들이 높이 대결을 벌이며 마천루를 형성하는 꼴 같다. 뉴욕 건물에는 기라성 같은 회사들과 멋쟁이라도 드나들지. 더 긴 출렁다리와 더 멋진 케이블카에 손님을 뺏긴 한물간 출렁다리, 케이블카는 흉물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테다.
개인적으로 출렁다리, 케이블카 같은 토목공사형 관광지가 마뜩지 않은 이유가 또 있다. 그 저렴한 미감을 도저히 좋게 보기가 어렵다. 아무리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도 왜 하나 같이 촌스러운걸까. 보랏빛, 자줏빛, 청록빛으로 반짝이는 야간 조명과 '힐링'과 '감성'으로 도배된 이상한 글귀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빼닮았다. 모두 한 회사에서 만드는 걸까? '소원 명당'이 이런 관광지의 필수템인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소원이야 절이나 교회 가서 빌면 될 텐데.
전국 어디를 가나 출렁다리가 발에 치이니 이젠 이런 생각마저 든다. 출렁다리, 케이블카, 스카이워크 안 만들기로 결심한 도시가 있다면 내 마음을 다 내주고 싶다고. 그런 식의 하드웨어 관광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시장, 군수가 있다면 주소지는 옮길 수 없어도 열렬한 지지자가 되겠다고.
"관광객은 사랑스럽지만 관광산업은 사랑스럽지 않다."
요즘 읽고 있는 정세랑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 나오는 말이다. 난폭한 산업이 된 관광, 호젓했던 동네를 망쳐버리는 후진 미감, 옆 도시가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철학 부재. 정말 사랑스럽지가 않다. 아니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