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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Sep 23. 2021

코로나 시국이어서 더 애틋한 서울 캠핑

세상 어렵다는 노을공원 캠핑장 예약을 성공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도시에 대한 감정은 부정적인 쪽이 더 컸다. 특히 해외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올 때 심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차창으로 뿌연 하늘이 보이면 괜히 목이 칼칼했고, 공항버스가 꽉 막힌 올림픽대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면 숨이 턱 막혔다. 부러운 구석이 많은 도시를 다녀오거나 휴양지에서 늘어진 시간을 보내다 오면 더 그랬다. 이 도시가 못 견디게 후지거나 끔찍해서였냐면, 그건 아닐 테다. 쳇바퀴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은 일종의 앙탈 같은 감정이 투영된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애’보다 ‘증’이 컸던 서울에 대한 관점이 최근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19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1년 반 이상 외국으로 출장과 여행을 못 나가니 내가 사는 도시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다. 원래도 백화점, 몰, 술집, 노래방 같은 실내공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코로나 덕에 야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게 결정적이었다. 서울에 산이 많다는 것, 근사한 공원도 많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겪으니 비로소 인식에 변화가 온 거다. 사람이든 도시든 역시 스킨십이 많아야 애정이 싹트나 보다.

이름처럼 노을이 아름다운 노을공원. 아침 해 뜰 무렵 찍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주말, 마포 노을공원에서 캠핑을 했다. 평일도 자리 하나 잡기가 쉽지 않은데 ‘예약의 신’ 아내가 무려 2박 예약을 성공했다. 사실 기대가 크진 않았다. 약 10년 전, 회사에서 노을공원 인근 난지캠핑장으로 야유회를 갔는데 캠핑장이 아니라 갈빗집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경험한 터였다. 자욱한 고기 연기, 여유라곤 없는 빽빽한 텐트의 밀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성방가. 난지캠핑장이 아니라 난민 캠프촌에서 고기를 뜯는 기분이었다. 끔찍한 기억을 안고 다시는 안 오리라 다짐했다. 지방 캠핑장 중에도 시장통 같은 분위기 때문에 학을 떼고 블랙리스트에 올린 곳이 많다.


노을공원은 달랐다. 주말인데도 한산했고, 고기 굽는 연기도 진동하지 않았다. 노을공원도 난지캠핑장과 비슷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거리두기 4단계 이후 캠프 사이트 절반만 예약을 받고 사이트당 이용객도 제한했다. 샤워실을 폐쇄했고, 10시 이후에는 음주도 금지했다. 이러니 호젓할 수밖에 . 오후 6시 즈음 체크인을 하니, 우리가 예약한 사이트의 전후좌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느긋하게 텐트를 설치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쐬며 저녁밥을 해 먹고 모닥불을 피워 불멍을 즐겼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9월 중순의 서울이 이렇게 캠핑하기 완벽한 때인지 몰랐다.

호젓한 노을공원 캠핑장의 밤. 벽돌로 만든 화덕이 있다는 것도 노을공원의 큰 장점이다.

이틀 밤을 지내보니  코로나 때문에 노을공원 캠핑장이 쾌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자체가 가진 특별함이 눈에 들어왔다. 지리적 요인이 가장 크다. 캠핑장이 주차장에서  2km 떨어져 있다. 배낭에 모든 짐을 이고 걸어서 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용객 대부분이 주차장에서 맹꽁이 전기차를 타고 온다. 짐이 간소할 수밖에 없다. 집안 살림  챙겨서 이사 가듯 캠핑하는 방식이 이곳에선  통한다. 그러니까 편한 캠핑을 선호하고 부어라 마셔라를 좋아하는 캠퍼에게 노을공원은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캠퍼 대부분이 커플이나 4 이하 소가족이었고 혼자  솔캠족도 많았다. 여느 캠핑장보다 이용객 매너도 준수했. 블루투스 스피커로 쩌렁쩌렁 음악을 듣는 이들도 없었다. 캠핑하는 내내 아내에게 말했다. “여기 진짜  좋다.”


사방으로 건물 한 채 안 보이는 전망이야말로 노을공원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해발 100m 높이에 캠핑장이 있어서 사방으로 건물은 물론 어떤 인공 구조물도 안 보인다. 어디를 가나 탁 트인 하늘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눈 씻고 봐도 서울이라고 믿기 힘든 풍광이다.

 

노을공원은 월드컵공원을 이루는 5개 공원 중 하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완공한 월드컵공원은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를 공원으로 바꾸기로 한 게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어릴 적 차를 타고 지나가기만 해도 냄새가 진동했던 난지도를 생각하면 그 쓰레기산 위에서 안락하게 고기를 구워 먹고 잠을 자는 지금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에 버금가는 기적 같다.

또 하나. 노을공원은 애초 골프장으로 개발했다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캠핑장으로 용도를 바꿨다. 덕분에 골프장 같은 천연잔디로 이뤄진 유휴공간이 정말 많다. 곳곳에 원두막도 있어서 캠핑을 안 하더라도 맹꽁이차를 타고 와서 피크닉을 즐기기에 좋다. 주말에도 반경 50m 안에 아무도 없는 잔디 놀이터를 독차지하고 놀 수 있는 공원을 서울에서 처음 봤다. 주차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이런 공간이 있기 때문에 한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코로나 종식을 원한다. 나도 그렇다. 하루라도 빨리 마스크를 벗고 싶고, 저녁때 친구들도 편하게 만나고 싶다. 그러나 캠핑 환경을 생각하면 코로나 종식 이후가 걱정된다. 노을공원이 다시 사이트를 100% 개방해 버글버글할 걸 생각하니 오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제한시간 없이 술 취해 놀고, 옆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아침이면 화장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모습을 상상하니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진다.

캠핑장 관계자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보다 쾌적한 캠핑을 위해 조금만 밀도를 낮추고 헐렁하게 운영해 보면 어떠냐고.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 사설 캠핑장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산림청이나 국립공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라도 전체 사이트의 50~70%만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다 좋은 건 아닐 것이다. 허무맹랑한 생각인 걸 알지만 적어도 캠핑만큼은 과거로 '백 투 노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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