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만 길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어쩌다 보니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인근 시로 이사를 나와 전세를 살게 되었다. 그런데 전세 기간 중에 이전에 살던 집이 갑자기 팔리게 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집을 팔면 바로 사야 한다는 친정어머니의 지론에 따라 지금 살고 있는 곳 근처에 다른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살아보니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새로 장만한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의 전세 만기 날짜가 우리 집의 전세 만기 날짜보다 넉 달이나 빠른 것이다. 세입자는 당연히 자신이 필요한 날짜에 이사를 하려고 했고, 집주인인 나는 내 욕심만 채울 수 없기에 어떻게든 세입자의 보증금을 만들어서 내어 주어야 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소시민들이 그렇듯 나 또한 여유자금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형제, 자매 찬스를 사용하고, 은행 찬스를 동원하여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대출을 일으켜서 보증금을 원하는 날짜에 맞춰 돌려주기로 했다. 8월, 드디어 세입자는 이사를 나갔고 비싼 은행이자는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데, 새 세입자를 찾기 위해 일찌감치 부동산에 내놓은 우리 집은 나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실, 살고 있는 곳의 교통이 제법 괜찮은 곳이라 나는 우리 집이 금방 새 주인을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 걸러 이틀 걸러 여러 사람들이 보고 갔지만 아무도 계약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매일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언제 손님이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약속이나 외출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물론 원칙대로 한다면 집이 나가든 안나가든 전세 기한 만기가 되면 집주인은 나에게 전세 보증금을 반환해줘야 하는 것이니 집을 보여주지 않아도 무방하겠으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서로 편의를 봐준다는 생각으로 협조하는 것이지만, 만일 집주인이 전세 매매를 위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고 있다고 느낄 때는 솔직히 열 받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부동산에 왜 우리 집 전세 매매가 안되는지 물어봤겠는가? (부동산 중개인 이야기로는 인테리어가 어두운 색으로, 올드해서 안 나간단다. 흑...)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매매가 잘 이루어지게 하려면
빵을 굽거나 커피를 끓여라.'
다 해봤다. 원두커피는 수도 없이 내려봤고, 구수한 냄새가 나라고 누룽지도 끓여 봤으며, 먹지도 않을 식빵 한 조각을 꺼내 토스트기에 구어도 봤다. 그러다가 냄새가 덜 나는 것 같아서 2분 더 돌렸다가 그만 빵 굽는 냄새가 아니라 빵 타는 냄새가 되고 말았다. 물론 매일같이 쓸고 닦았다. 아마도 내 평생에 가장 깨끗한 두 달을 보냈을 것이다. 뭐, 이유야 어떻든 집안이 깨끗해지니 좋기야 무지 좋더라. 하루하루 대출이자는 쌓여가고, 외출도 못하는 나는 본의 아니게 집순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도 답답했던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집이 잘 나가게 하려면.' '집 잘 나가는 방법'. 등등....
내가 깜짝 놀란 것은 나 말고도 이런 걸 검색해본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거였다. 커피나 식빵 냄새 풍기는 것은 고전에 속했고, 그간 몰랐던 새로운 비법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사 잘 되는 집 가위를 구해다 현관문에 걸어 놓는 것!
이런 비법은 오래된 민간 풍습을 떠올리게 했다. 옛날에 구전으로 떠돌아다니는 비법 말이다. 아들을 낳으려면 돌부처 코를 갈아 마셔라.(동네 어귀의 돌부처 코가 없는 이유는 이런 남아선호 사상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실제로 했다가는 맹장 걸리기 십상이니 참는 게 좋다.) 또 이런 비법도 있다. 아들을 낳으려면 아들 많이 낳은 아녀자의 서답을 구해 차고 다녀라. 서답이란, 옛날 여인들의 생리대 같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비위생적인가. 아들을 갈구하는 봉건사회는 이런 말도 안되는 비법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장사 잘 되는 집 가위를 구해오는 것과 아들 많이 낳는 여인의 서답을 구해오는 일이 어쩐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어찌 되었건, 장사 잘되는 집 가위 같은 비법은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식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장사 잘되는 집은커녕 장사 잘되는 집 가위를 어디서 구해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한 참을 고민하던 내 선택은 집안에 굴러다니는 아무 사무용 가위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가위를 들고 서서 한참 망설이던 나는 스스로도 민망해서 차마 문 위에 걸어놓지는 못하고 신발장 제일 윗 칸에 슬며시 넣어두었다.
"요즘 뭐 안 풀리는 일 있어요?"
앞자리에 앉아 계시는 러시아 선생님이 갑자기 물어왔다. 퇴근 무렵, 집을 보러 오겠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전화로 약속을 잡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 통화 목소리가 조금 컸었나 보다. 워낙 답답했던지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커피 끓여보셨어요? 빵 굽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다 해봤지요."
나는 신발장에 가위 올려놓은 이야기를 했다. 다들 웃겨 죽겠단다.
"러시아에서는요, 일이 잘 안 풀리면 사거리에서 동전을 던져요."
"동전을요?"
"네. 그리고, 하나를 던져서 안 풀리면 일곱 개를 던져요. 그러면 일이 잘 풀려요."
퇴근 준비를 하던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저 앞 큰 사거리에서 동전 하나 던지겠어요. 오늘 집 보러 오기로 했으니까 빌어주세요."
사거리를 지나던 나는 운전석 유리를 내리고 백 원짜리 동전 한 닢을 살짝 던졌다. (사거리에서 던진 동전 때문에 차바퀴가 미끄러지거나 부서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나 조심했다. 혹시라도 아는가. 동전이 튀어 무슨 일이 생길지. 게다가 그 사거리는 교통량도 별로 없는 사거리였다.) '오늘 오는 손님이 꼭 집을 계약하기를.....'이라고 빌면서.
하지만, 그날 방문한 사람도 계약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부동산 직원이 돌아간 후 나는 티브이 앞에 앉아서 내가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니었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전 일곱 닢을 모두 던졌어야 했나? 칠백 원이나 던져야 하다니, 미신인데, 솔직히 좀 아까웠다.
효과가 있어요.
마침내, 우리 집이 새 세입자를 만나게 되었다. 집을 계약하고 며칠 뒤, 러시아 선생님이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오셨다. 나는 드디어 집이 나갔다고 이야기하면서, 가위와 빵과 커피와 동전 이야기를 하면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남선생님이 거들었다.
"가위를 걸고 동전을 던지면 진짜 효과가 있어요."
그냥 마음의 위안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깜짝 놀라 동시에 외쳤다.
"왜요?"
"그건, 동전을 던지고 일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니까 그래요. 일은 꼭 풀리게 되어있거든요. 집은 언젠가는 나가게 되어있잖아요."
요는 이렇다. 가위를 걸고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구우면서 우리는 기다린다. 시간이야 얼마가 걸리든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외치는 것이다. "아, 비법이 효과가 있었구나."
새로 안면을 튼 부동산 중개인은 이전 중개인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우리 집 상태를 소상히 묻더니,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도배를 새로 해주기를 약속받았다. 그 사이 나도 집주인과 통화하면서 집 보러 오는 사람들마다 들먹이던 낡은 전등을 교체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 도배와 LED조명 교체가 결정되고 삼일만에 일어난 일이었고 부동산에 집을 내어놓은 지 거의 석 달만의 일이었다.
아, 그것이 아닌가? 새로운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고, 주인이 집수리를 약속하고, 전등 교체를 결심한 것은 내가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고, 신발장에 가위를 숨기고, 백 원짜리 동전을 사거리에서 던진 덕분이었을까? 아 그렇구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