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Mar 07. 2020

방울이

"너 거기서 뭐해?"

방울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 17년을 산, 우리 집 강쥐 이름이다.


강쥐 나이 17세면 사람 나이로 거의 90세에 해당한다고 한다. 방울이를 어려서부터 진료하셨던 동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 이야기로, 치와와는 다른 개들보다 평균 수명이 조금 더 길다고 한다. 그래도 17세면 정말 많은 나이다.


평범한 치와와였던 방울이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작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서 돌아다니며 놀고 있던 방울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요란한 울음소리에 놀라 딸아이와 내가 달려가 보니, 방울이의 눈동자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눈동자 한가운데 상처가 나있고 거기로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백내장이 생겨 치료를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중에 전후를 살펴보니, 아마도 백내장 때문에 눈곱이 끼었고, 그 눈곱이 답답했던 방울이가 제 앞발로 눈을 긁었던 모양이었다. (치와와는 눈동자가 크고 얼굴보다 눈알이 튀어나와있다.) 이 일을 계기로 방울이는 그만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날 긁힌 상처 때문에 방울이의 눈동자 한가운데는 검은자위 대신 흐릿한 회색 자위가 생겼다.


방울이의 자해소동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눈을 치료하는 한달 여 동안 보호캡을 쓰고 지냈는데, 보호캡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었던 방울이가 배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방 이곳저곳에서 방울이의 실수 자리를 찾는 것은 외출하고 돌아온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같이 방울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지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주문했다. 난생처음 기저귀라는 불편한 도구를 착용하게 된 방울이는 온몸을 긴장하고 기저귀를 벗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뒷다리를 이쪽 저쪽으로 교묘하게 움직이면서 기저귀를 벗었고, 우리는 얼른 다시 채웠다. 방울이는 기저귀를 찬 채 소변을 보는 것에 이내 익숙해졌다. 무거운 보호캡과 기저귀가 불편한 방울이는 자주 지쳐 잠에 빠졌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눈 치료가 끝날 무렵 방울이는 그만 늙어버렸다. 등은 구부정해지고 회색빛 털이 늘었다. 살이 빠지고 몸이 자그마해 졌다.


이제 방울이는 앞을 볼 수 없다. 방울이의 방 불을 켜면 갑자기 밝아진 불빛에 화들짝 놀라는 걸 보면 빛을 느끼기는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지라 산책을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앞을 볼 수 없는 방울이는 뒷걸음질로 온 방을 돌아다닌다. 어쩔 때는 가구 사이에 엉덩이가 끼어 얼음이 되어있기도 하고, 가끔은 책상 아래 늘어진 전선줄과 끙끙거리면서 싸울 때도 있다. 책을 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면 뒷걸음질을 하다 그만 현관 입구에 내려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방울이를 볼 때도 있다. '너 거기서 뭘 해?' 하고 물으며 방울이를 건쳐올린다. 어쩌다가 거기 빠졌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

"악악"

방울이는 하루 종일 잠을 잔다. 몸을 콩벌레처럼 동그랗게 말고 하루 종일 잠을 잔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겨우 일어나 특유의 뒷걸음질로 물그릇과 밥그릇을 찾아다닌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방울이는 코끝으로 그릇의 감촉을 찾아다닌다. 가끔 밥그릇이 비어있으면 밥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럴 때 방울이의 소리는 "악! 악!"으로 들린다. 마치 "밥! 밥" 하는 것만 같다.  


가끔 밥그릇도, 물그릇도 비어 있지 않은데 방울이가 "악! 악!" 을  때가 있다. 똥을 싸놓고 제 발로 밟아 쾌적하지 않다는 표시를 할 때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방울이는 아무 데나 똥을 싼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지라 뒷걸음질로 걷다가 그만 제 똥을 제가 밟아 배변 패드에 온통 묻혀놓는다. 방안은 냄새로 가득 찬다. 잔뜩 깔아놓은 방울이의 시트를 치우는 것은 물론, 방울이가 깔고 앉은 방석까지 모두 세탁해야 한다. 가끔은 밥그릇에도 묻혀놓을 때도 있다.  


아,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방울이는 자주 울타리 안에서 지낸다. 배변 실수가 너무 잦아서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는 한 배변 순간을 포착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우리는 울타리 안에 배변패드를 잔뜩 깔아놓았다. 방울이가 실수해도 치우기 쉽게 말이다. 방울이가 실수할 때마다 우리는 시트를 치우고, 방울이를 목욕시키고, 다시 시트를 깐다. 지난번에는 하룻밤에 네 번이나 목욕을 시킨 적도 있다.

"책임질 수 있니?"

방울이는 심장이 안 좋다. 비대해진 심장은 방울이의 폐를 누르고 있다. 방울이의 숨소리는 대체로 고른 편이지만 가끔 쉰소리가 나거나 쌕쌕거리며 몰아쉴 때가 있다. 심장약을 먹기 시작한 것도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방울이는 의료보험이 없다. 그래서 의료비가 비싸다. 한 번 갈때마다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씩 깨진다. 나이 먹은 방울이는 젊고 이뻤던 방울이보다 손이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든다. 그래도 여태껏 아프지 않고 우리 곁을 지켜줬으니 감사한 일이다.


방울이를 데려오고 한 동안, 누군가가 개를 키우는 일에 대해 물어보면 '괜찮아, 아이들도 좋아하고.'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면 키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크던 작던 생명이 들어오는 일이니까.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무거운 일이니까.


TV 채널마다 애견 프로그램이 하나씩은 나오고, 귀여운 개들이 애교를 떨고 주인과 교감한다. 나는 TV 프로그램이 그런 젊은 개들 말고 방울이와 같은 노견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태어나 젊음을 뽐내다가 마침내 노인이 되어 사그라지듯, 개들도 귀엽고 이쁜 시절을 지나 방울이처럼 늙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들인다는 것은 젊음의 아름다움 만이 아니라 힘겨운 노년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눈물로 맞이하는 아름다운 이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냄새나고 힘든 시간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질풍노도(?)의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늙어가는 방울이의 모습은 머지않아 내가 맞이하게 될 시간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저렇게 힘없고 볼품없이 늙어 가겠지? 늙고 병들어 초라해지고, 생명의 남은 한 방울마저 쓰고 나면 삶 저편을 편안하게 맞이하게 될까?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남아있고 활기가 남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겠지. 방울이의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방울이도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전과 가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