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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Feb 13. 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시리즈:사카라 무덤의 비밀

이 그림 :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걱정되는 분들은 패스해주세요.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큐멘터리 <사카라 무덤의 비밀 secrets of the saqqara tomb>
* 감독 : 제임스 토벨 (2020.10.15)
* 러닝타임 : 1시간 54분

조세르 왕의 <계단 피라미드>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이다. 사카라는 <계단 피라미드>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고대 묘지. 이집트인들로만 이루어진 부바 스테이온 발굴단은 2018년 봄부터 이곳에서 개인 무덤을 발굴하고 있다. 묘주인의 이름은 '와흐메티.' 발굴단은 일 년의 발굴 기간 동안 3,1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하고, 묘주인의 이름과 직업, 생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고대 유적 발굴의 생생한 현장을 보고 싶은 분, 고대의 인물이 살아오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무덤은 산 자의 세계를 떠나 죽은 자의 세계로 가는 집이다. 그들은 육신이 있으면 영혼이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라를 만들었고, 삶의 세계에서 누렸던 모든 부를 죽음의 세계로 가져가기 위해 정성 들여 무덤을 만들고 부장품을 함께 묻었다. 무덤과 그 안의 벽화, 상형문자, 부장품, 시신 등 무덤에 남겨진 모든 것들은 무덤의 주인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증언한다. 고대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은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들이 남긴 유물 유적을 통해 그들의 삶, 시간, 역사의 비밀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2018년, 이집트인들로 이루어진 부바 스테이온 발굴단은 사카라의 고대 묘지에서  4000년에서 4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고대 무덤을 발굴한다. 이 고대 무덤은 특이하게도 도굴의 흔적이 전혀 없는 개인의 분묘. 무덤 안의 상형문자로 미루어 보건대, 이 무덤의 주인은 고대 이집트의 고위직을 지낸 '와흐티에'란 사람의 개인 분묘인 것 같다. 왕이 아닌 개인의 분묘가 이처럼 화려한 것도 독특하지만 무덤 안의 상형문자와 초상 조각은 무덤의 주인인 와흐메티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음을 증언한다. 일례로, 그는 무덤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남겼고 50점이 넘는 자신의 초상 조각으로 무덤의 벽면을 장식했다. 그는 누구였고 이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은 그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영화의 제목인 '무덤의 비밀'이란 한낯 영화의 관객을 위한 수사인가, 아니면 드라마틱한 상상을 자극할만한 어떤 비밀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가? 

무덤의 수수께끼

거주하는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분묘도 마찬가지이다. 분묘 안에 남겨진 것들은 묘 주인의 삶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발굴단이 어떤 단서를 매개로 이를 추적하고 재구성하는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무덤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벽화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읽고, 무덤의 양식과 조각상에 대해 분석하고, 매장된 시신들로부터 묘 주인의 나이와 생전의 건강상태, 죽음의 원인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와흐메티 분묘의 벽화 속 인물들을 분석하고 어떤 내용의 글이 적혀있는지를 해석한다. 특히, 와흐메티 분묘에서는 네 개의 묘굴이 발견되어 발굴단은 이로부터 많은 것들을 추정할 수 있었다. 텅 비어있는 제1 묘굴, 18-20세 정도의 소년 시신 두 구가 발견된 제2 묘굴, 젊은 아이와 30대, 50대 여성이 발견된 제3 묘굴, 마지막으로 묘주인인 와흐메티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제4 묘굴. 이들은 화려한 무덤 장식과 달리 소박한 목관에 안치되었거나 관도 없이 서있는 상태로 묻혀 있기도 했다. 


이들은 왜 죽었을까? 그리고 왜 이런 모습으로 묻히게 된 것일까?
발굴단은 무덤의 원래 주인은 와흐메티가 아니며 그가 다른 사람의 무덤을 빼앗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무덤의 원래 주인은 누구이며 발굴단이 그런 결론을 내린 근거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을 확인하는 기쁨도 함께 누리시기를. 

발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다큐멘터리는 발굴 현장에 참여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 와흐메티 분묘의 발굴 과정, 분묘 바깥의 발굴 현장 등 다양한 각도에서 발굴 현장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발굴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유물 분석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고고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이 가운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고고학 박사도, 문화부 관련 공무원도 아니지만 직접 모래를 파내고 모래 사이에서 유물을 찾고, 잊혀진 고대 무덤의 출입구를 발견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를 이어 발굴 현장에서 일해온 사람들이다. 발굴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일을 배웠고 그들의 아이들 또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발굴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발굴 현장에서 자신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수 천년 전의 바구니를 모래 틈에서 발견한다. 또 자신들이 야자수 잎을 채취하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야자수를 채취하는 벽화를 발굴 현장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고대 분묘 발굴 현장은 직장이기도 하지만 현재로부터 고대로 이어지는 이집트인으로서의 삶의 정체감을 일깨우는 곳이기도 하다. 

이 그림 : 세계 제일의 미녀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번에 소개할 미술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네페르티티의 흉상'이다.


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제18왕조 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아크나톤)의 왕비였다. 네페르티티는 '미인의 출현'이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이집트 제1의 미인이라는 칭송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투탕카멘왕의 이모이기도 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종교개혁을 이끄는 등 정치적으로도 매우 개혁적인 성향이었다.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수 천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채색이 살아있다. 주황의 피부색, 붉은 입술, 갸름하고 분명한 얼굴 선. 긴 목 아래의 화려한 장신구와 다소 무거워 보이는 초록색의 높은 모자는 그녀가 고귀한 신분임을 보여준다. 초상 조각의 네페르티티는 청춘의 젊음보다는 완숙미 넘치는 중년으로 보인다. 다소 꺼져 있는 광대뼈 아래의 그늘, 눈 밑 주름 등이 그녀의 나이를 말해준다. 살짝 내리깐듯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노라면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진다. 


이와 같은 사실적인 초상조각은 이집트 미술에서 매우 보기 드문 것으로, 네페르티티 시대의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가 이런 양식의 미술품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그녀의 흉상이 미완성이란 점이다. 한쪽 눈의 안구가 없다. 한때 이 안구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나 스캔 검사 결과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하니, 여왕의 한쪽 눈이 왜 미완성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네페르티니 흉상은 1912년 이집트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발굴과 관련한 국제적인 관행은 유물을 소유한 나라와 발견한 발굴팀이 반반씩 나누는 방식이었다. 네페르티니 흉상을 발견한 독일 발굴팀은 보통의 이집트 미술 양식과 다른 혁신적인 양식의 네페르티티 흉상에 열광했고, 이 흥분은 당시 독일로 보낸 전문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하여튼 놀라운 작품이다.'


그들이 이 흉상의 반출에 얼마나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흉상은 반출 허가 품목에 끼워 독일로 반출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새로운 예술사조와 맞물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뒤늦게 이 흉상의 존재를 알게 된 이집트 정부는 흉상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무위에 그쳐 오늘에 이르렀다.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은 아직도 베를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그들은 돌려줄 생각이 1도 없다. (참고 :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김경임 저)


박물관과 전시장이 제국주의 시대 부를 과시하고 약탈 문화재를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의 박물관은 약소국에서 빼앗아온 약탈 문화재로 가득 차 있다. 이집트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당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 중 하나다. 문화재의 보호, 이것이 강대국들이 내세우는 약탈 문화재 반환 거부 이유다. 그들이 보호하고 있을 때 가장 잘 보호할 수 있고, 이집트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보러 올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될 수 있으며 그래서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논리다. 네페르티티 흉상은 다소 애매한 상황에서 반출된 문화재이지만, 약탈된 것이 분명한 많은 이집트의 미술품들은 지금도 유럽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영화의 중간, 발굴팀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발굴팀은 이집트인들만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이 이야기를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외국의 기술을 빌리지 않고 이집트인들 만으로 발굴팀을 꾸릴 만큼 그들의 발굴 기술이 발전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이집트에서 얼마나 많은 문화유물이 발굴의 명목으로 해외 반출되었는지를 생각할 때, 그들이 가진 뼈아픈 경험이 이런 이야기를 하게 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이 영화에서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을 떠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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