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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y 03. 2018

갈치 한 토막

마트에 들렀다가 모처럼 물 줗은 갈치 세일하는 걸 보게 되었다.


나는 생선 조림을 좋아한다. 집집마다 조림 만드는 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친정엄마의 갈치조림에는 무나 감자가 들어가고, 고등어조림 역시 무가 주로 들어가는데, 가끔 봄 철에는 김장김치나 알타리 익은 것을 넣고 조릴 때도  있다. 신김치의 개운한 맛이나 알타리 특유의 시원한 맛이 일품인 전라도식 조림이다.

나는 대개 엄마의 레시피를 따르는 편이지만, 가끔 단호박을 넣을 때가 있다. 단호박을 넣은 생선조림은 개운한  맛은 없지만 달콤한 단호박 맛 덕분에 나름 개성 있는 생선조림이 된다.


모처럼 요리할 마음을 낸 나는 단호박 한 덩어리와 갈치 한 팩을 사서 돌아왔다. 


갈치 비늘을 살짝 벗기고, 채반에 건져놓는다. 단호박 속을 파서 씨를 빼고, 뚝뚝 썰어 놓는다. 단호박은 익히면 많이 물러지기 때문에 초록색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써야 한다. 아이들이 양파를 좋아하기 때문에  커다란 양파를 다듬어 역시 가지런히 썰어놓는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한 식탁에서 밥 먹기가 힘들어졌다. 딸아이는 툭하면 다이어트를 합네, 외식을 합네 하면서 굶기 일쑤고, 독립한 아들 역시 '집 밥이 역시 최고'라고 하면서도 집 밥 먹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다 반찬을 챙겨다 줘도 냉장고에서 그대로 화석이 되기를 여러 번. 그러다 보니 반찬 만들어다 주는 횟수도 점점 줄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요리하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과 상상이 피어오른다.


양파를 더 넣을까. 갈치조림 싸다줄 때 밥도 가져갈까. 최근 이직해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는 아들은 공부하느라  밥 해먹을 시간이 없다며 전기밥솥을 씽크대 밑에 아예 내려놓고 햇반을 사다 놓았다.

아무리 맛있어도 막 해놓은 고슬고슬한 새 밥만 못 할텐데, 햇반이 맛있다는 아들이 종내 이해되지 않다.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만든다. 육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 마늘, 생강, 고추가루, 매실액 약간. 내 레시피는 늘 똑같다. 요리에 별 재주가 없으니 모든 요리에 베이스로 쓰이는, 일종의 만능 간장이랄까. 생선조림도, 오징어 볶음도, 닭도리탕이나 닭갈비도 다 이것 한 가지로 만사 오케이다. 오징어 볶음과 닭갈비는 여기에 고추장과 매실액이  조금 더 들어갈 뿐이다.이런 요리임에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이 고마울 뿐이다.


육수가 끓는다. 바닥에 단호박과 양파를 깔고, 그 위에 갈치를 얹는다. 그 위에 양념장을 뿌린다.가끔 양념장을 생선 위로 끼얹어 준다. 그래야 양념장이 생선에 고루 배인다. 마지막으로 냉동실에 얼려둔 대파를 듬뿍 얹고 다시 한 김 익히고 나면 요리 끝.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엄마, 오늘 친구랑 약속있어.'

딸 아이 문자가 와 있다.

혼자 상을 펴고 앉는다. 냄비 뚜껑을 여니 김이 솟아오르면서 맛있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넉넉하게 담아내어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함께 먹을 것을 상상했지만 오늘 조림은 혼자 먹게 생겼다. 갈치조림을 째려보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해본다. 이건 딸 아이 꺼, 내일 먹으라고 하면 되고. 이건 아들내미 갖다줄 거 등등. 갈치 토막마다 주인을 정해 놓고 내 몫의 갈치를 작은 접시에 담아 내었다. 단호박에 적당하게 간이 배어 달달하면서도 짭짤한게 제법 맛있다.


다음 날, 딸아이는 새로 시작한 공부로 7시에 집을 나선다. 당연히 아침을 못 먹는다. 바삐 나서며 한마디 남긴다.

'엄마 저녁에 와서 먹을께.'

나는 갈치조림을 끓여 놓고 출근한다. 그런데 딸 아이는 동아리라고 또 늦는단다. 나는 또 끓여 놓는다. 무와 달리 단호박은 자주 끓이면 물러져서 으깨지는데 걱정이다.


이틀이 흘렀다. 그 사이 나도 약속이 있어 하루 저녁 식사를 걸렀다. 그리고, 냄비를 열어 보니 하루 안 데워 놓았다고 그만 멀리 가 버리신 갈치 조림. 그냥 맛있게 먹고 또 만들면 될 걸 나는 왜 그리 애태우면서 아꼈는지. 내가 미련하고 한심해서 한숨이 나왔다.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아끼다 똥 되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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