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그게 출산과 육아일지라도.
* 궁금하실테니 미리 밝히자면, 저자 사카이 준코는 1966년 도쿄에서 태어났고 독신입니다.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와 <책이 너무 많아>, <결혼의 재발견> 외 다수의 책을 썼습니다.
저자는 전작 <결혼의 재발견> 이후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저는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고 합니다. 독자들과 대화하면서 여자의 삶은 결혼보다도 출산 여부에 따라 더 크게 달라진다는 걸 실감하며 아이가 없는 인생을 어떻게 봐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일본을 보면 안다'는 말처럼 일본은 한국과 닮았고 몇 걸음 나아가있습니다. 글의 여러 대목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처럼 생생했습니다.
아이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자녀를 갖고 싶다고 말하면 오히려 남성들이 부담을 느껴 결혼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역설, 임신하지 않은 상태로 결혼을 한다는 소식에, '임신이라는 비상수단을 쓰지 않고 당당히 실력으로만 상대방이 결혼할 마음을 먹게 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네.'라는 생각. 드러내기 어려운 민낯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대목에는 약간의 자조가 섞여있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 '다른 사람과 똑같아지고 싶다'고 생각하게만 하면 일본인은 움직입니다. SNS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p.57)
- 여고생들에게 아이의 귀여움을 체감시킨다거나 어떤 종류의 호르몬을 젊은 남녀에게 비밀리에 투약시키는 것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편의점 도시락에 호르몬을 몰래 섞는일도 있을 법 합니다. (p.64-65)
옥시토신 스프레이가 이미 제품화되었다고하니 혹여 누가 이 책을 읽고 정책에 반영할까싶어 등줄기가 서늘합니다. 출산지도나 여성의 고학력과 출산율의 상관관계에 대해 버젓이 떠드는 보도를 보면 마냥 기우는 아니겠지요.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에 비유한 현실과 아이 없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시각차이, 출산 조차 스펙이 된 현실은 다소 격앙되 보이지만 냉정한 현실입니다.
- 남성은 아이를 낳는 기계가 아니니 결혼해 기계를 입수하는 것부터 먼저 하라는 겁니다. (p.78)
- 세상이 바라는 것은 '건강한 난자를 가진 젊은 여성이 쑥쑥 아이를 낳아주는 것'이지 노화된 난자를 가진 중년 여성이 분발해 낳는 것이 아닙니다. (p.82)
- "아이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습니다"라는 말은 요컨데 "이렇게 멋진 것을 모른 채 아이가 없는 여러분은 나이만 처먹고 계시는 거에요"라는 말로 곡해할 수도 있다는 거지요. (p.61)
- 저는 앞으로 출세를 위해 아이를 낳는 여성이 늘어나리라 내다봅니다. 즉 일하는 여성이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을 때 자신의 유능함을 드러내기 위해 관리 능력이나 영어회화 실력을기를 뿐 아니라 '자녀 양육의 경험'도 쌓지 않을까요. (p.99)
저자는 아이가 없는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자유롭게 일하고 스스로에 충실할 수 있는 기쁨, 나라의 한 구성원으로서 출산 외에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여하고 싶은 마음, 나이가 들어 아프거나 혼자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오키나와의 토토메-일종의 위패-문화에서 느낀 서늘함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개인의 경험과 처지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 초반 결혼-30대 중반 출산-아이는 둘'이라는 공식은 여전히 강력하지요. 혹시 여러분의 입에서 자기선택에 기반한 조언- '~해라'의 형태건 '~하지 마라'의 형태건-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정말 그게 상대방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돌아봐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말이 실은 '니가 그래야 내가 편해', '나만 손해볼 수 없지'의 변형이 아닌지. 머릿 속 계산기는 잠시 내려두고 마음으로 연결되려고 노력해 주시기를.
'장미대선'을 앞두고 다음 대통령에게 바라는 기대와 요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권주자들은 저출산에 대한 대안도 내놓아야 겠지요. 그들의 정책과 사회적 장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걸 잘 판단할 수 있는 소양을 우선 갖추면 좋겠습니다. 내 안의 편견, 고정관념이 눈을 가리지 않도록요. 결국 각자의 입장이 모여 통념이 되는 거니까요.
어제 청와대를 떠난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 때문에 '독신여성은 남을 배려 못하고 공감능력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지면 어쩌나도 걱정됩니다. 독신이거나 아이가 없지만 충분히 남을 배려하고 잘 공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아이가 있어도 그렇지 않기도 하고요. 이 책에는 보수정당인 자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는 아베 총리 아내의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이 없는 인생'을 하늘에서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몇 자 적는 제 상황이 궁금하신가요? 알게 되면 습관처럼 조언이 튀어나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잠시 내려놓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봐 주세요.
저는 누구나 안심하고 혼자 살 수 있는 사회, 누구나 무리 없이 낳고 싶은 만큼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무엇을 할 여건만큼이나 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출산과 육아일지라도요. 저부터 변화의 시작이 되려고 노력하려고요. 저자 사카이 준코가 그랬듯, 스스로 원하는 걸 돌아보고 책임지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스스로의 선택이 최선이 되도록 애쓰고 계시죠? 그러니 타인의 선택 역시 존중하고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