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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Hawaii] 5.카팔루아, 밤의 해변에서 같이

On the beach at night together

by 이진희
우와! 여기가 오늘 우리가 묵는 곳이야?

나도 이 말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럿이 여행을 가면 숙소를 예약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내 몫이다. 여행을 혼자 많이 다녔고, 적어도 숙소만큼은 미리 잡는 스타일이라 그런 걸까? 아니, 못 참아서다. 각자 역할을 나누었으면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을, 최선의 숙소를 최저가에 예약했으면 하는 욕심(내지는 조바심)에 지고 만다.


이번 여행만큼은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 허나 숙소예약을 담당한 일행은 차일피일 미루는 눈치였고 급기야 '나는 사실 숙소를 미리 예약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라고 뒤늦게 고백했다. 그리하여 허겁지겁 마우이 숙소를 전수조사(나란 사람이 그렇다)했다.


그렇게 맘껏 뒤지고나면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인터넷으로 본 사진을 확인하는 정도라 크게 놀라지도 기쁘지도 않다.


더구나 첫 숙소는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싼 숙소엿다. 카팔루아에도 고급 리조트가 있지만 첫 날은 서울에서 이동해서 잠만 자고 떠날 예정이라 굳이 욕심이 안 났다. 해변으로 바로 연결되는 방도 있었지만 어차피 어두울 때 도착할 것 같아서 수영장 옆에 있는 가장 저렴한 방을 잡았다. 좋은 곳에 머물다가 나빠지는 것보다 소박한 곳에서 좋은 곳으로 나아지는 게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이렇게 수영장 뷰를 예약했습니다만 (실제는 더 칙칙했을지도)

건강하게 피부가 그을은 매니저가 체크인을 도와줬다. 웬 걸, 추가 요금 없이 해변 앞의 방으로 바꿔주겠단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행운의 경험담이 나에게도 찾아오는구나.


이 사진 속 풍경이 실제로 펼쳐지는 순간 나도 드디어 이 탄성을 지를 수 있었다.

우와! 여기가 오늘 우리가 묵는 곳이야?


여행선수들에게 물어보니, 비교적 늦게 도착하거나 멀리서 온 예약자, 허니무너들에게 호의로 이렇게 방을 바꿔주기도 한단다. 하지만 8할 이상은 결국 운.


방에서 문을 열면 테라스로 나갈 수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해변이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하고 아직도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뛰어들어 서핑도 하고,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싶었지만 공항에서 먹은 햄버거도 어째 영 이상하고 시차와 누적된 피로 때문에 샤워만 겨우 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그 날 도착한 대부분의 한국 여행객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평소 저질체력인 걸 알고 일정 따위 잡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잠이 깬 건 새벽 3시. 부스스 일어나 창을 내다보니, 달이 지고 있었다. 모두 잠들어 조용한 그 시간에 해변을 거닐었다. 선셋 못지 않게 매혹적이었다.


달이 밝았지만 반대쪽 하늘엔 여전히 별이 떠있었다. 보름달이 잔잔한 밤바다와 젖은 모래 위로 반사됐다. 따뜻한 빛이 사방에서 빛났다. 이 중에 사람이 만든 빛은 없었다.


길지 않은 산책 후에 다시 피로가 몰려왔다. 다가올 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다시 깊이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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