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를 살피는 <부지런한 사랑>

읽고 나니 아이들이 달라 보이며 기운이 나는, 두 권의 책

by 이진희

3월부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닌다. 덕분에 첫 주에 삼십 분 남짓, 둘째 주부터 오전 두 시간, 셋째 주가 되자 네댓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거의 이년 만에 생긴 자유는 어색했다. 어떤 날은 뭘 할까 고민하다 끝났다. 언제든 전화가 오면 달려가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 앉아 책을 집어 들었다.


지난 두 주동안 읽은 두 권의 책은 공교롭게도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와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이다. (두 번째 책은 청소년과 청년, 중장년 수강생들의 이야기도 다루지만 분량이나 내용으로 보아 어린이 글쓰기 교실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두 작가는 자신이 만난 어린이들을 정성스레 관찰하고 기록했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 외에 많은 것을 고민한다. 자신의 '고객'인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해야 하나, 존댓말을 해야 하나'는 시작에 불과하다. 가을과 겨울에 아이들이 외투를 입고 벗는 순간을 비롯해 분실물을 통보하고 다루는 방법처럼 소소하다면 소소한 순간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어린이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많이 배운다.


이렇게만 말하면 꽤 진지하게 들리지만 실은 너무 재밌다. 낄낄대다가 주변을 살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책장을 덮고 한참 동안 먹먹하게 앉아있던 적도 여러 번이다.

독서교실 이야기다 보니 사이사이 책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책들이 궁금해 참기 어려웠다. 책을 읽는동안 틈틈이 담아뒀더니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가 무거워졌다. 읽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와 '읽고 나면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 지는지'는 내가 좋은 책을 꼽는 중요한 요소이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꽉 차게 만족스러웠다.

이슬아 작가는 20대 중반부터 글쓰기 교실을 열었는데 주 고객이 어린이다.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고, 그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온다. 작가는 아이들이 '좋은' 글을 쓰기 이전에, 글 자체를 쓰게 만들어야 했다. 만만치 않은 이 과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어린이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작가는 섬세하고 사려 깊게 써 내려간다.

이 책에는 아이들의 글이 많이 실려있다. 원고지에 손글씨로 써 내려간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 안에 담긴 고민이나 관점에 놀라기도 하면서.


두 작가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자주 놀라고 더불어 배우며 지낸다. 종종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지 두 작가와 함께 깊이 고민했다.


두 책이 재밌으면서 감동적인 이유는 작가들의 통찰력과 글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지만 더불어 '어린이'가 이미 그런 속성을 가진 존재인 덕분이다. 그들은 미숙하고, 그래서 지도가 필요하고, 때로는 NO라는 수식어를 붙여 소외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이 모험가들은 재미와 감동을 늘 품고 산다.


두 작가는 (영영 혹은 아직) 양육자가 아니다. 양육자가 아닌 사람이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반대로 양육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경험과 자격이 부리는 힘은 막강하다.

저자들 역시 그 점을 염두하고 많이 고민했다.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그 누구보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덕분에 나는 여느 양육자나 교육이론가가 쓴 책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 책에서 배웠다. 사려 깊고 부지런한 '남의 집 어른'들 덕분에 아이들을 더 존중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말에 현혹되지 않고 어린이들이 원하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의지가 생겼다.


아이를 데려가라는 전화가 오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나간다. 어린이들이 얼마나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싶을까? 아직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많아서 얼마나 답답할까? 가늠하다 보니 우리 어린이들이 얼른 보고 싶어 진다. 아직은 아가에 가까운 녀석들이 어린이가 되어도 이 책들의 구절들을 잊지 않고 싶다.


시간이 되어 읽던 책을 접어들고 아이들을 데리러간다. 그들의 얼굴이 빛난다. 옷에 묻은 스탬프잉크 자국이 그저 빨래 거리가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의 흔적으로 보였다. 밥풀이 팔꿈치에 붙어있고 볼이 발그레한 걸 보니 신나게 먹고 뒹굴었나 보다. 이 어린이들의 세계를 잘 살피고, 부지런히 사랑해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많은 꿈이 이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