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했던 연습모임 후기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들어보셨나요? 작년에 개발되어 우리나라에는 2월 설 연휴 전후로 큰 인기를 끌었지요. 저도 궁금해서 사용해보다가 우연히 한 친구의 프로필에서 낯익은 단어를 발견했어요. 비/폭/력/대/화.
제가 관심 가지고 공부하는 대화법을 다른 누군가도 나누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노아'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 친구와 저는 직접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클럽하우스를 통해 종종 대화를 나누고, 또 그 친구도 제게 '비폭력대화에 관심 있어?' 물은 터였어요. 클럽하우스를 사용해 볼수록 대화연습을 하기 적절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노아가 생각나 용기 내어 제안했어요. 혹시 같이 비폭력대화를 연습해볼 생각은 없는지.
노아는 같이 해보자고 흔쾌히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 외에도 비폭력대화에 관심 있는 한솔과 원태, 두 사람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머뭇머뭇하고 있는 저에게 파일럿이라도 해보자고 구체적인 시행계획도 제안하고요. 그렇게 우연히 모인 네 명은 <공감의 대화>라는 클럽을 만들고 3월 파일럿에 이어 4월과 5월에 걸쳐 비폭력대화 연습 방을 엽니다.
저희 클럽의 운영 규칙은 아래와 같아요.
누군가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용기를 존중하고 이 방 안에서만 공유한다.
충고와 조언은 상대가 요청했을 때만 하고 평가와 판단은 삼간다.
핵심을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이나 수단과 방법보다는 느낌과 욕구에 집중한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돕는 안전한 지지자이다.
느슨하지만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정서 공동체를 지향한다.
전문가가 알려주는 형식의 강의 방이나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데 의의를 두는 수다방과는 달리, 저희는 함께 지지하고 돕는 마음으로 연습을 해보기로 했어요.
또 하나의 특징은 '착한 반말'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한국어의 특성상 나이나 성별, 역할에 따라 아무래도 위계가 생기기 마련인데요. 클럽하우스에서 착한 반말을 해보곤 '어, 이렇게 수평적인 언어로 비폭력대화를 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수평어를 쓰니 정말로 공감 장애물인 조언, 충고로 빠질 확률도 낮았어요.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 한결 덜해지니까요.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방을 열긴 했지만 '누가 오겠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노아와 제가 처음 만난, 불멸방 친구들 한둘만 와주어도 좋겠고 그조차 오지 않으면 우리끼리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회가 거듭될수록 연습에 참여해보겠다는 스피커 친구들을 단 한 명씩 늘리는 것이 저희의 소박한 목표였지요.
첫 주제는 부담 없이 각자의 '소중한 기억 나누기'로 정했어요. 그 안에서 충족된 욕구들을 찾으며 소중함을 다시 느끼고, 욕구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낯설었을 텐데도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느낌과 욕구 목록을 훑어보며 정성 들여 표현해주었습니다.
탄력을 받은 저희는 겁 없이 비폭력대화의 연습 주제들을 풀어놓았어요. 그중에서도 <평화롭게 거절하기 연습>과 <거절 듣기와 부탁하기 연습>은 제일 반응이 뜨거웠어요. 그만큼 거절하고 부탁하기가 일과 인간관계에서 절실하면서 하기 어렵기 때문이란 뜻이겠지요?
거절이 왜 어려운지, 거절하려고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살펴보자 그간 거절을 못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이어서 상대의 부탁을 승낙하면 좌절될 나의 욕구와 승낙하면 충족될 욕구를 차근차근 찾아봤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절의 말을 직접 해보는 단계'까지 욕심을 냈어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친구들이 떨리는 음성으로 한 마디 한 마디 자신의 목소리를 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또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즌1에서 나누었던 주제들을 여기 공유할게요.
주제 토크 <공감, 나도 할 수 있을까?>
- 공감의 순간 벌어지는 일들, 각자 공감에 성공(!)했을 때의 경험을 나눈다면? (Speaker들 이야기 듣기)
- 공감이 잘 되지 않았던 대화, 다시 해보기
주제 토크 <자기 비난, 다르게 해 보기>
- 내가 내 편이 아니었던 경험 (간단히)
- 내가 나를 비난하는 말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해보기
- 그 문장을 떠올렸을 때의 느낌
- 자기 비난을 관찰로 바꾸기
- 관찰로 바꾼 문장에 대한 느낌
-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욕구
- (가능하다면)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부탁
주제 토크 <욕구에 기반해서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부탁하기>
- 왜 내가 부탁했는데 안 들어줘? 내 부탁에 뭐 문제 있나? (부탁했는데 상대가 들어주지 않았던 기억)
- 그냥 내가 해버리고 말지 뭐 (부탁을 하기 미안해서 못한 기억)
- 부탁에 얽힌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
- 내 부탁이 구체적이고 긍정적인지 돌아보기
주제 토크 <내가 내 편이 돼주는 법, 자기 공감>
-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는 지난날의 말이나 행동을 관찰로 쓴다. (구체적이고 정확할수록 도움이 된다.)
- 위 행동에 대해 나 자신에게 하는 비난이나 비판의 메시지를 최소 3가지 이상 쓴다. (=내면의 교육자)
- 이 메시지들은 내가 머릿속에서 스스로 지어낸 생각이나 이야기임을 의식하면서 거리를 두고 본다. (나는 나 자신에게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구나.)
- 각 메시지 뒤에 있는 욕구를 찾는다. 위 행동으로 이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천천히 의식하고 충분히 그 느낌에 머문다.
- 눈을 감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고통에서 그 욕구 자체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낀다.
후회되는 행동과 말을 한 내게도 충족하려는 욕구가 있었다. (=내면의 선택자(Inner Chooser)
- 그 욕구도 나의 한 부분이며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의식한다.
- 나에게 할 수 있는 부탁 생각해보기 (=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다르게 할 수 있을지)
주제 토크 <가까운 사이, 말로 해야 알까?>
- 갈등 상황을 관찰로 표현하기
- 그때의 느낌을 찾고 내 욕구를 표현하는 연습
- 부탁은 서로 욕구로 충분히 연결되면 자연스럽게. 오늘은 연결 부탁을 해보기 "내 얘기 들으니까 어때?"
주제 토크 <당연시하는 말>
- 각자 들어 본 당연시 하는 말들
- 내가 들은 당연시 하는 말과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
- 그때 충족되지 않는 내 욕구는 무엇인지
-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해보고 달라진 느낌 나누기
- 부탁은 서로 욕구로 충분히 연결되면 자연스럽게
주제 토크 <내게 상처가 된 그 말이 '제발'이라고?>
- 최근 들은, 상처가 된 말 열전
- 그 말을 들은 나의 자기 공감
- 그 말을 한 상대의 느낌과 욕구는?
- Please와 Thank you로 바꿔보기
주제 토크 <불편한 상황을 다루는 궁극의 대화연습. 네 개의 귀>
- 자기 비난(자칼 IN)
- 타인 비난(자칼 OUT)
- 자기 공감(기린 IN)
- 타인공감(기린 OUT)
비폭력대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주제 목록을 보며 조금 놀라실 수도 있겠어요. NVC 1은 물론이고 2나 3 과정에서 다루는 주제들도 담겨있으니까요. 그만큼 무모(!)한 연습모임이었지만 도전할 수 있었던 건 매주 찾아와 준 (아마도 그날 처음 비폭력대화를 접했을) 친구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내놓고, 프로세스 안내에 따라 용기 있게 연습해준 덕분이에요. 생전 처음 느낌과 욕구에 기반해서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고는 본인도 깜짝 놀라며 탄성을 내지른 친구들의 음성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이어오던 이 방은 5월 말을 마지막으로 잠시 쉬고 있어요. 마지막 날에는 파격적(!)으로 자정을 넘겨 그간 꺼내놓지 못한 피드백과 축하, 감사를 나누었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진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에, 준비하며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엄청난 보람과 기쁨으로 바뀌었어요.
https://www.clubhouse.com/club/%EA%B3%B5%EA%B0%90%EC%9D%98-%EB%8C%80%ED%99%94
안전하고 느슨한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연습해보지 않을래요? 클럽 <공감의 대화> 검색해서 연결 이어가요.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