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무례했던 시간들아, 안녕!

정문정 작가의 <더 좋은 곳으로 가자>

by 이진희

입사 초, 부서 회식 자리였다. 메뉴는 삼겹살. 먹기 시작한 지 20분쯤 지났을까? 옆자리 선배가 말했다.

너는 아줌마 있는 집에서 자랐나 보구나?


난 반찬을 리필해 온다거나 고기를 굽겠다 나서지 않고, 열심히 먹기만 했다. 입사 환영회식이니 초반엔 그저 맛있게 먹는 막내가 예쁠 수 있지만 두 번째나 세 번째 판부터는 적당히 돕는 게 매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매너'를 몰랐다.

막 대학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한 내가 그제까지 매너를 배운 곳은 집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외식으로 삼겹살을 먹은 적이 없다. 삼겹살은 정육점에서 사다 집에서 먹는 메뉴였고, 기름이 튀는 게 싫다고 엄마가 부엌에서 구워오셨다. 성인 여럿이 고기를 구워 먹은 경험이 없으니 그런 자리에서의 매너를 보거나 배운 적이 없었다. 해맑게 먹기만 하는 내 모습이 선배의 눈엔 '곱게 자란 아이'로 보였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모른다고?' 의아할 수도 있겠다. 경험이 없고, 배운 적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다. 아니 모른다. 당시의 나는 사내 전화는 '9'를 눌러야 외부로 전화가 걸린다는 것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문열림 버튼을 누리며 기다려야한다는 것도 몰랐다. 한때 '뒤따라 오는 사람을 위해 무거운 문을 잡아주는 것은 기본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았다. 이를 두고 몇몇 지인들이 '아니, 그걸 가르쳐 줘야 되냐고' 볼맨 소리를 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뒤따라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을 누군가를.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드러나는 매너를 흔히 센스내지는 눈치라 부른다. 여기에 표정이나 자세처럼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과 자기의 삶을 운용하는 지혜까지 포함한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의 태도를 가지려면 우선 안전이나 배려, 평화, 공감 같은 가치를 인식해야한다. 가치에 대해 무감각하면 태도에 닿기 어렵다. 문을 잡아줘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지 않아서 본인이 쾅 부딪혀도 그게 무슨 문제인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 그 상황에서 본인의 몸과 마음이 느꼈을 불편함과 자극에 둔감하다. 그래서 태도는 아는 사람에게는 쉽게 보이지만 모르는 사람은 알아채기 조차 어렵다. 가르쳐줘도 배우지 못하는 태도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경험이 없으면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몰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나아지거나 성장하려는 노력도 덜한다.


자신이 뭘 모르는지 알고, 가치를 실현하고자 결심했다면 이제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인위적으로 후천적으로 배운 매너는 처음엔 어색하다. 보고 자란대로, 몸이 기억하는대로 하고 나서 아차차한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태도가 된다.


나의 20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식사하는 예절부터 옷을 고르고, 주변을 관리하고, 운동으로 몸을 돌보고... 삶의 기초를 새롭게 쌓았다.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고 책의 도움을 받았다. 때로는 드라마와 영화, 소설처럼 삶을 옮겨놓은 이야기에 기댔다. 문화센터 강의처럼 특정 분야를 가르쳐주는 수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좋은 태도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에겐 조심스레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묻기도 했다. 역시 대부분은 의아해하며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어깨너머 보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좋은 태도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배우진 못한다. 하나하나 스스로 익혀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고, 하필 내가 그런 운을 타고났을 뿐이다. 많이 돌아왔지만 그래도 버틴 게 기특하다. 이젠 어디 가서 '아줌마 있는 집에서 자랐냐'는 이야기는 듣지 않을 정도로 모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며 지낸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여러 결정을 했고, 책임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더 좋은 곳으로 가자>를 읽으며 작가도 나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작가는 요령이라고 표현했지만 가치관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좋은 질문을 던진다. 마치 아는 언니-제 나이가 더 많습니다만-의 사려 깊은 조언을 듣는 느낌이다. 뒤에서 흉을 보는 사람은 많아도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 많아 아팠다. 이만큼의 이야기가 쌓이기까지 작가가 애썼을 순간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릿했다. 글이 무척 재밌고 잘 읽히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중간중간 작가와 함께 머무느라 읽는 속도는 더뎠다.

정문정 작가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으로 무례한 사람에게 정신 승리하거나 맥없이 지지 않고 끝내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번 책에서는 남들보다 다소 고단한 인생이어도 지치지 않고 버텨내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그리고 (나는 이만) '더 좋은 곳으로 가겠다'라고 선언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이) '더 좋은 곳으로 가자'라고 제안한다. 혼자만 호의호식해도 그만일 것을, 굳은살 배긴 그 손을 건네는 마음이 따뜻하다. 제안만 한 게 아니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빼곡히 담았다. 직접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대목을 잘 찾아 꼭꼭 씹어드시길 권한다.


신입사원인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삼겹살을 마냥 먹고만 있진 않았을 것 같다. 그 외에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지는 여러 시행착오들을 줄여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듬어가야 할지 막막한 2-30대 여성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인생 가이드북이다.

동년배(!)인 내게도 큰 응원이 되었다. 작가처럼 다른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덜하도록 돕고 싶다는 욕구도 깨달았다. 몰라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아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삼겹살 회식자리의 선배도 자기 스타일대로 사인을 준 셈이다. 당시엔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만. (뱀발이지만 그 선배와는 잘 지낸다. 글만으로는 오해할 법한데 좀 까칠해도 앞뒤가 다르지 않아서 같이 있으면 유쾌하다.)


타인에게 무례했을지도 모를 날들을 돌아봤다. 오해받으면서도 억울할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성장에 목이 말랐지만 도움이나 지지가 부족했던 그때의 나를 정성스럽게 애도하자 그 시간과 아주 유쾌하게 이별할 수 있었다.


다소 칙칙하고 추상적으로 보였던 표지가 새롭게 보인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서로 연결된 것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이 마치 자기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각자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게 돕는다. 잘 돌보고 디뎌내 앞으로 나가라고 격려한다.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 갖고 있었던 오해도 풀었다. 나는 제목에서 '웃으며'가 늘 마음에 걸렸다. '아니, 무례한 사람에게 웃기까지 해야 해?'라고 약간 화가 나기도 했고, 혹 여자라서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젠더에 대한 고민도 했다.

이번 책을 읽으니, 그 웃음이 '관용'임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무례함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번쯤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 말이다. 그 여유는 '너의 무례함이 나의 존엄성에 와닿지 못한다'는 자신감 위에서 빛난다.


더디지만 나도 좋은 곳으로 가고 있다. 같이 가고 싶은 여러 얼굴이 떠오른다. 긴 말 대신 이 책을 건네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적 자본론 / 마스다 무네야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