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에 압도되지 않으려 읽은 두 권의 책

슬픈 세상에서 새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기쁜 말

by 이진희

4월이 되면 문득문득 가슴이 철렁하다. 봄볕이나 싱그러운 꽃을 보며 느끼는 기쁨은 잠시, 2014년 봄의 일이 나를 무겁게 누른다. 부모가 된 몇 년 전부터 무게는 몇 배나 더해졌다.

슬픔은 이내 무기력함으로 이어진다. 당시도, 지금도 이미 어른인 나는 그날 이후 어떻게 다르게 살고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 캐캐 묵은 질문에 내놓을 답이 마땅히 없어서다.


이런 내게 책은 유일한 위로이자 돌파구다. 절실한 마음으로 두 권을 골랐다. 이웃 어른들을 인터뷰했다는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말은 무엇이냐고 묻는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다.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이들을 적는다. 유명인이나 화려한 수식어구를 붙일만한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병원 응급실 청소노동자 이순덕 <나보다 더 고달픈 사람을 생각했어요>

농업인 윤인숙 <버섯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이존자, 장병찬 <나를 살리는 당신>

인쇄소 기장 김경연 <색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인쇄소 경리 김혜옥 <숫자를 맞추는 사람은 누구인가>

수선집 사장 이영애 < 고쳐지는 옷과 마음>


그들은 대부분 '본인이 인터뷰이가 돼도 되나' 의심스러워하며 작가의 요청에 응했다고 한다. 짐작컨대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지 않았으리라. 때로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쉬이 잊히는 이들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지난한 노동과 사람에 대한 사랑, 베풂과 삶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어르신들 이야기에서 내 주변의 어른, 그리고 내 삶을 본다. 책을 읽으며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눈물이 자꾸 흘렀다.


지치지 않고 계속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는 작가는, 본인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인터뷰한다. 가난한 집에 시집오는 게 안쓰러워 '나한테 시집을 오면 조밥을 잡수실 거예요'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밥사발에도 눈물이 있고, 죽사발에도 웃음이 있으니,
죽을 먹어도 웃을 수 있다면 살겠다


장병찬 할아버지가 고단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그저 돌아보면 잘한 것 같다고, 자신의 삶이 풍족하다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비결을 알겠다.


책을 만드는 기장 김경연과 경리 김혜옥의 인터뷰는 고운 손때가 묻은 연장 같았다. 꾸준히 해온 일에서 기쁨을 찾고 예쁜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그들의 손에서 태어난 책은 또 얼마나 고울까. (이 책이 바로 그 책. 인쇄되고 배송을 기다리는 사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실렸을지 궁금해하며 그들이 책을 슬쩍 펼쳐보는 장면을 상상한다.)


글 사이사이 사진이 실려있다. 통상 인터뷰에는 시원한 얼굴 사진이나 스튜디오에서 찍은 상반신 컷이 곁들여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초반에 시원하게! (내가 바로 인터뷰이야!)

이 책에 실린 사진은 조금 다르다. 초반 피사체는 일하는 손이나 그들의 노동현장이다. 그러다 마지막에야 삶의 여러 순간이 깃든 얼굴이 등장한다. 이야기에 젖어들며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다 이내 마지막에 정답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내 상상과 달라도 괜찮다. 이미 이야기를 통해 여러 얼굴들을 떠올렸으니까. 누군가의 삶에 대해 알아가는 속도에 발맞추어 조심스럽게 그들을 만나는 것 같았다. 인터뷰이와 독자 모두를 보살피는, 사려 깊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다 읽은 후에 사진만 천천히 다시 이어 보기도 했다.



두 번째 책은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다. 이 책엔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자신의 경험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이 버무려져 있다. 내게 이 에세이는 첫 글부터 마지막 글까지 하나의 글처럼 다가왔다. 읽으면서 점점 나를 잘 알고, 잘 설명하고 싶어졌다. 또 타인의 삶이 궁금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희열과 감동, 두근거림과 설레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깊은 슬픔과 비통함까지 온갖 감정이 스쳐갔다. 한바탕 감정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황홀함. 생동하는 거대한 에너지에 휩싸였다.


혹시 마음이 닿는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감정의 바다에 함께 풍덩 빠져보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 만난 감정들을 모호하게, 여운을 그대로 살려서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가령, 이 책의 거의 막바지인 이 대목을 읽고 당신은 무어라 말하겠는가?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세상은 변해야 하고 우리는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위험에 처한 생명에 대해서.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각자가 숨기고 싶었던 어둠을 뚫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 더 잘 듣고 더 잘 말하고 더 잘 알게 되면 확실히 이 세상에 위안과 아름다움은 존재할 것이다.
이제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누가 말하고 있는가? 혹시 역사가? 혹시 시스템이? 혹시 상황이? 혹시 부동산 시장이? 내가 가진 것이? 나 아닌 누가 나 대신 나를 말하고 있는가? 혹시 당신 목소리를 잃었다면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p.234-235)


수전 손택은 '연민이란 감정은 종종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 시기를 지내는 우리의 마음이 이런 종류의 연민이 아니길 원한다. 무기력에 압도되거나 얕은 슬픔에 젖어있고 싶지 않다. 왜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여태 살아남았는지 여전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는 끝내 내 목소리로 묻고 귀기울여 듣겠다. 계속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웃 어른들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라고 정성스럽게 돕는 두 권의 책 덕분에 나는, 매 순간 새 마음으로 기쁜 말을 찾아 나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몰라서 무례했던 시간들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