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상대하되,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작년 3월부터 팟캐스트를 제작하다 잠시 쉬었다. 비폭력대화를 연습하고 알리기 위한 팟캐스트인데, 이름도 <대화만점>으로 바꾸고 8월부터 재개했다.
http://www.podbbang.com/ch/11272
제작을 쉬며 포맷과 내용에 대해 고민했다. 유익한 대화법 책이 새로 나왔나 서점을 둘러보다가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의 저자 샘 혼(Sam Horn)의 책을 발견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책은 일관되게 '괴물같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괴물이 되지 않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흔히 저지르는 실수와 그걸 바로잡아주는 솔루션이 장마다 들어있어서 아주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하지 말라는 걸 난 다 하고 있었어 ㅋㅋㅋ)
책에 나온 상황을 보자. 의뢰인은 사위가 딸을 조정하려하고 가족들에게 무례해서 고민이다. 주로 가족들이 다 모이는 식사 자리에서 분란이 일어나는데 '다음에도 또 무례하게 굴면 식사 중인 가족들이 다같이 일어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왜 그 한 사람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식사시간을 희생해야하는가' 묻는다. 불편하고 공격적인 상황에서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면서 정신승리하려고 할 때,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왜 그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하고 피해야하는가?
('귀찮다'거나 '재밌다'고 표현하지만 실은 무섭고 두려워서 피하는 경우도 많다. 솔직해지자 우리.)
저자는 권한다. 의뢰인이 사위에게 이렇게 말해보기를,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걸세.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자리는 몹시 소중하거든. 내 딸과 다른 가족들을 정중하게 대하도록 해. 자네 의견만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야. 남이 말하는 데 함부로 끼어들지도 말고. 그게 우리 집 규칙이니 지켜 주게. 그래야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네더러 식탁에서 일어나 나가라고 할 참이네. 내 딸은 남아 있을 거야. 이건 의논이 아니고 협박도 아니네. 알아서 처신하게'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걸 짧고 분명하게 알려주고, 원칙을 확실히 말하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일러주라는 제안이다. 일반적이고 주체가 불분명한 당위나 강요가 아니라 '가족과의 자리가 소중하다'는 본인의 욕구가 이 대화의 이유임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해 보였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 자리를 뜨라고, 가타부타 설명이나 토론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규칙을 정했으면 그 뿐, 사위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 말라고. 사위의 기분이나 생각보다 가족의 규칙이 중요하다는 걸 확실하게 해두라고.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자책하거나 생각에 빠질 필요도 없다고. (뜨끔) 그저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한 것 뿐이니까. 조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만약 식사 중에 사위가 못된 행동을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가리키며 말씀하세요. '이보게 자네 물건을 챙겨 떠나게' 라고요. 사위가 딸에게 함께 가자고 하면 한층 더 단호한 목소리로 사위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 딸을 끌어들이지 말게. 내 딸은 여기 앉아 식사를 마칠 테니까. 규칙을 이미 얘기했지 않은가. 자, 이제 일어나게'라고 하시면 됩니다. (p.76-77)
속이 시원했다. 착하고 약한 사람들이 피하고... 그러면 괴물들은 자기 방법이 통했고 승리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건 정신승리일 뿐 괴물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파괴적인 방식을 더욱 강화한다. '통하니까'
그렇다고 괴물을 이기기 위해 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은 내게 이 책은 좋은 자극이자 원동력이었다. 아버지에게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한 딸의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언어의 사무라이는 남들이 가하는 부당한 압력이나 심리적, 육체적 위험을 막아 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한다. 내 친구의 큰 딸은 바로 그런 일을 해냈다. 이혼 후 혼자 두 딸을 키운 내 친구는 큰딸의 조지타운 대학교 졸업식과 둘째 딸의 하와이 고등학교 졸업식이 겹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고민 끝에 친구는 하와이 행을 택했다. 그런데 큰딸의 졸업식에 아무 예고도 없이 아버지가 모습을 나타냈다. 유난히 비판적인 성격의 그 아버지는 딸의 학위 수여식이 끝나자마자 다가가 독설을 던졌다.
"4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구나. 대체 정치학 학위를 받아서 뭘 한다는 거냐? 절대로 직장을 찾지는 못할 테니 수천 달러나 되는 돈을 공중에 날려 버린 셈이야."
기세 좋게 떠들던 아버지는 큰딸이 손을 들자 놀라 입을 다물었다. 딸은 아버지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천천히 하지만 힘을 주어 말했다.
"아빠, 그만하세요, 제가 어머니로 보이시나요?"
아버지는 딸의 단호한 태도에 흠칫 놀랐다. 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 이 대학을 졸업한 것이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정치학 학위를 받아서 기쁘고요. 저를 축하하러 오셨다면 환영이에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떠나 주세요."
주도권을 잡았고 부당한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해 필요한 말과 행동을 했다. 울지도, 말없이 참아 낸 후 집으로 돌아가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부적절하여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침묵하며 고통받기보다는 생각을 말로 표현했고, 아버지에게 그에 따른 책임을 지웠다. 또한 아버지가 체면을 구기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p.71-72)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과 괴물같은 악인 사이에서
1) 통쾌하게 승리 (앞에서는 당하고 참은 후에 뒤로는 이를 악물고 노력하거나 때로는 백마 탄 왕자님-주로 재벌집 자제분들이 등장-의 도움을 받음)
2) 똑같이 괴물이 되어 더 심하게 복수
3) 처참하게 당함
크게 이 세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은 노오력한다고 1번처럼 되지 않는다. 백마 탄 왕자님도 내가 사는 세계엔 없다. 2번이나 3번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내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 그 순간의 당황되고 힘든 나를 공감해주고 내 욕구에 집중해서 상대를 연민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의외로 괴물이나 악인은 '약함'을 안고 있다.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두려움을 공격적으로 표현한다는 것도 안다. 그 누구보다 자기자신에게 가혹하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된다.
하지만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연민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최근에도 난 어떤 예비괴물에게 연민으로 다가가는데 실패하고 무관심과 포기로 대처했다. 나 스스로를 우선 보호하고 싶었다. 어렵지만 그래도 내 도전은 계속된다. 피하기만하거나 내가 괴물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때로 괴물들(?)의 공격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라도 해야할 때, 이 책에서 권하는 문장들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그냥 입으로 소리내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하시지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분의 인상이 나빠지는 걸요. 설마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랑 함께 있을 때는 그런 말을 말아주세요.
듣기 불편하군요.
점잖게 말씀하시지요. (p.100-101)
이 표현들은 글로만 보면 또다른 공격이다. 저 표현들이 자기보호이자 또 다른 폭력이 안 되려면 내가 충분히 평화로운 상태로, 상대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서 전달해야한다. 그러려면 자기공감과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쉽게 읽고 잠깐 혼자 속시원할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