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생활 혁명 / 사쿠마 유미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혁명

by 이진희

저자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이다. 브루클린과 포틀랜드 같은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힙스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하고 생활하는지, 왜 그들이 다른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는지 고민한다. 바탕에 고국인 일본문화가 깔려있어서 미국 작가에 비해 심리적 거리가 한결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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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작아서 가방에 쏙 들어간다. 글이 일기처럼 섬세하고 아기자기해서 읽고 있으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의 생동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거창하지 않지만 잔잔하게 적어내려간 글은 술술 읽힌다. 생각을 생활로 옮기고 소신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행동가들의 좋은 에너지가 페이지마다 듬뿍 담겨있다.


저자 역시, 가치관을 자신의 브랜드에 투영하는 크리에이터나 독립적인 제작자가 자유롭게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며 감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변화는 그저 개인의 감동이거나 한 때의 유행이거나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주변에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작은 섬처럼 운영하는 크고 작은 그것들이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호응하면서 지금 미국 문화 가운데서 점점 큰 파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문화 조류는 스스로가 소비하는 물건의 본질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입에 넣거나 몸에 걸치는 물건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알고, '더욱 큰 것을 더 많이'라는 소비활동과 결별하여
돈을 내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고급 브랜드 가방보다, 자신과 강하게 연결된 느낌을 주는 물건, 예를 들면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디자인하고 지역의 공장에서 자기와 같은 생산자가 만든 물건을 구매합니다.


생활혁명가들에게는 내가 사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관심과 지역공동체와의 연결이 브랜드나 가격보다 중요하다. 물건 뿐 아니라 식재료 분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로카보어(locavore)가 그 예다. 로카보어는 자기가 사는 지역(이상적으로는 반경 100마일=약 160km이내)에서 식자재를 조달하자는 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한다.


이 말이 등장한 것은 부르클린보다 앞서 1990년대부터 퍼포먼스 시장 문화가 번창한 샌프란시스코인데, '지역의 것을 계절에 맞춰 먹자'는 마크로비오틱에서 탄생한 사고방식이다. 식재료를 운반할 때 발생하는 환경 비용을 가능한 줄이려는 환경 보호의 관점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살림, 자연드림, 초록마을 같은 생활협동조합이나 유기농 식재료점에서 지역의 것을 계절에 맞춰 공급하고 있다. 일반 마트도 HACCP 같은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는 식재료를 팔고 있지만 최근 달걀파동에서 보았듯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지역 지원형 농업도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도 다양한 지역에서 영농법인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철마다 주문해먹는 제주 무릉외갓집 http://www.murungfarm.co.kr/murung/index.html 이라는 마을기업이 떠올랐다. 제철에 지역의 것들을 생산자의 얼굴을 보아가며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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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한 다양한 변화 중에 '에디블 스쿨야드 (Edible Schoolyard)'도 기억에 남는다. 직역하면 '먹을 수 있는 교정'이란 의미인데, 앨리스 워터스라는 활동가가 운영한 프로그램이다. 그녀는 학교의 자투리 땅을 이용해 삼삼오오 아이들이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게 도왔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몸을 써서 일하고, 식물들이 성장하는 것을 관찰한다. 열매를 맺으면 거두어서 함께 나눠 먹으면서 아이들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폭력적인 사건들까지도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EdibleSchoolyard.jpg 에디블 스쿨야드에서 식문화의 개혁을 일으킨 앨리스 워터스와 아이들 (책의 일부)

미국은 소비가 미덕인, '블랙 프라이데이'처럼 쇼핑 자체를 이벤트로 승화시킨 나라다. 그런 미국에서부터 힙한 생활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대항하며 '바이 낫씽 데이(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운동을 벌이고 있고 2000년대 들어서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몇몇 사례는 아직 다소 낯설고, 너무 앞서나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결정의 중심에 돈이나 기업이 아니라 사람의 평화로운 본성과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되고 배울 점이 많았다. 안 그래도 대형건설사의 아파트를 분양 받기보다 조금의 땅을 사서 이웃들과 함께 집을 짓고, 불필요한 살림살이를 줄이며 소비를 신중하게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지갑을 열 때,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지구 반대 쪽에서 벌어지는 일이 저자를 통해 내게 전해졌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인생사의 큰 결정에까지, 이 변화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나 어떤 열매를 맺을지 나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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