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윌리엄 맥어스킬

원제 : Doing Good Better

by 이진희

이 책은 불편하다. 동기가 바르고, 옳은 일이고, 좋은 뜻으로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던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의와 열정에 이끌려 무작정 실천하는 경솔한 이타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벌인 두 개의 자선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번째 '플레잉 펌프'는 우리나라(SBS)에도 소개된 적 있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타고 놀면 그게 물펌프의 기능을 해서 아프리카의 급수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콘셉트였다.

이 사업은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셀럽들의 지원과 언론의 홍보에 힘입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프리카에 도움이 되고, 멋지고, 희망차 보이던 그 사업의 실상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많은 돈을 허공에 뿌렸는지, 현지에서는 어떤 폐해를 낳았는지, 무엇보다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릎을 치게된다. 물론 이 사업을 착안하고 진행했던 사회운동가의 동기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결과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

반면 두번째 사례는 별 것 아니어보인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디테일은 생략) 하지만 과학적으로 측정해보니 투입되는 금액에 비해 효과가 매우 컸다. 실제로 그랬다.


이 책은 기부나 사회활동처럼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이성적이길 촉구한다. 어떤 단체들이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세상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기준을 세우고 결과를 측정해서 지수로 보여준다.


사실에 반대되는 가정을 세워 문제에 달리 접근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가늠하는 것은 과학적 추론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타주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반사실(counterfactual)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한데, 이는 자칫하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p.105)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 다섯개의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한다.


1.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2.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3.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4.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5.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이 툴은 비단 기부나 사회현상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각자의 삶에서 내리는 결정도 참으로 비이성적으로, 느낌적인 느낌에 따라 내리고 있으니까.


아래 사례는 특히 와 닿았다. 철학적인 고민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부딪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늘부터 닭가슴살을 구입하지 않는다 해도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변함없이 닭고기를 구입한다면 식용으로 도살되는 닭의 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가? 슈퍼마켓에서 닭고기 반입량을 결정할 때 닭가슴살 1인분 매출이 감소한 사실에 신경이나 쓸까? 하지만 수천 명, 수백만 명이 닭가슴살을 사지 않으면 수요가 감소하므로 식용으로 사육되는 닭도 줄어들 것이다. 이때 우리는 역설에 직면한다. 개인은 변화를 일으킬 수 없지만 수백만 명의 개인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역설 말이다. 그런데 수백만 명의 행동은 수많은 개인들의 행동이 한데 모인 총합이 아닌가.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면 변화가 일어나지만 '한 사람'의 힘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할까? 저자는 이 부분을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름의 판단기준과 착안점을 제시한다.


'NGO에 들어가거나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과 지금 하는 일을 전문화해서 소득을 높힌 후에 기부비율을 높히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사회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고민도 저자는 과학적으로 풀어놓았다. 다양한 사례도 재미를 더한다.


좋은 동기로 좋은 사람들이 열심히해도 의사결정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해 많은 자원이 새어나간다. 그걸 악용하는 이런 사람들까지 가세하는 게 현실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7/08/11/story_n_17724662.html

세상이 나아지기는 참 어렵다. 더디지만 냉정하게 꾸준히 지독하게 노력해야 될까말까 싶다. '공영'이라는 다소 막연하지만 '좋은' 지향점을 가진 일을 하다보니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더구나 파업 중에 이 책을 탈독해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뒷표지를 보자. 가디언은 이런 서평을 내놓았다.

그의 조언 덕에 기부하던 단체 두 곳을 바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같은 단체 안에서 기부분야를 바꾸었고(아름다운 가게는 기부하는 돈을 어디에 쓸지 기부자가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한 단체는 기부를 중지했으며, 새로운 단체에 기부를 시작했다.


비단 기부나 사회활동 같은 거시적인 이슈 뿐 아니라 내 삶에서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각자가 단지 '열정이 아닌 냉정으로' 현명하게 결정하고 실천하길,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이 평화롭고 건강해지길 기원해 본다. (일단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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