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이용마

by 이진희

지난 9월 4일, 파업 출정식이 있었다. 파업가를 부르며 집회가 마무리되는 즈음 어깨너머로 (후배로 보이는) 동료의 휴대전화가 보였다. 네이버에 뭔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파업가 가사’

예전의 나를 보는 듯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는데 이건 또 뭐야. 그런데 다들 외워 부르잖아?’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 어색했다. 찾아보니 가사도 살벌하다. ‘해골이 두 쪽 난다’니.

2000년대 학번인 내가 입사 전에 많은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인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공연 혹은 월드컵 응원. 재밌게 놀고 흥을 터뜨리는 자리였다. 함께 분노하고 호소하며 변화를 이끄는 경험은 어느 세대부터인가 끊어졌다. 촛불집회 전까진.

노조나 집회에 대한 경험은 각자 다르다. 한 자리에 모여있지만 누군가는 민중의례도 낯설고, 80년대 학번인 선배들은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기억하듯 각종 민중가요 가사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 책을 쓴 이용마 기자가 아마 그런 선배이지 않을까. 그는 87학번 정치학도였다. 졸업 후에 MBC에 입사해서 스무해 남짓 기자생활을 했고, 2012년 언론사 총파업 당시 노동조합 홍보국장을 하다 해임된다. 그리고 아직 복직되지 못했다.


그는 현재와 경재, 사랑하는 두 아들들에게 인생의 궤적과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독자로서, 한 세대를 뒤따라 걷는 후배로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개인사와 한국사회의 여러 이슈가 절묘하게 버무려졌다. ‘응답하라 1988’과 현대사 다큐멘터리가 어색하지 않게 교차편집된 느낌? 진학, 취업, 결혼, 출산 같은 삶의 마디를 어떻게 겪어냈는지 소소하고 미시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 당시의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굵직한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읽는 내내,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을 그와 함께 거닐며 건강하고 믿을만한 선배의 조언을 듣는 느낌이었다. 때로 답답하고 귀엽기도 하고 또 안타깝고 슬펐다.

고민은 깊고, 주장은 때로 완고하지만 결코 권위적이지 않다. ‘살아보니~’, ‘내 경험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꼰대 스토리로 빠지기 쉬운 소재들을 사려깊고 현명하게 풀어 나간다. 무엇보다 지난 세월동안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고 증명해 보였기에 글에 힘이 있다.

이 책을 읽는 지금, 5년 전처럼 KBS와 MBC 모두 60일 넘게 파업 중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막바지에 담긴 공영방송에 대한 제안이 와닿았다. 방문진과 이사회 대신 사장선출을 국민대리인단이 해야한다던가, 국민이 엘리트를 개혁해야한다는 주장.

그는 아이들을 염두하고 썼다지만 나같은 후배, 더 넓게는 힘겹게 살아가는 2017년 대한민국의 모두를 헤아렸을 거다. 원칙과 상식이 바로서길 바라면서. 듣기 싫지 않게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고 지혜를 나눠주는 선배의 존재가 절실하던 차에 소중한 책을 만났다.

그의 시행착오와 희생을 기억하며, 또 그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는 같이, 계속, 재밌게 흥을 터뜨리며 싸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