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나와, 같이 행복합시다

맨박스(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 토니 포터 / 한빛비즈

by 이진희

여기, 얇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앞 표지엔 제목과 저자 외에 별다른 게 없어요. 뒤집어보니 '남자는~'으로 시작되는 열 개의 문장이 적혀있습니다. '울지 않는다'로 시작해서 '쫄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급기야 '여자를 소유한다', '남자다워야 한다'로 끝납니다. 이내 저자는 되묻습니다.


그런데 남자다운 게 뭐죠?

저도 궁금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갈증을 풀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로 책을 펼쳐들었는데요, 한달음에 재밌게 읽어버렸습니다. <맨 박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갇히면 갑갑할 것 같아서, 갑갑하게 찍어보았어요.


저자는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그 무엇보다 궁금할 성별은) 남자입니다. 각종 차별이 어떤 구조적 문제 때문인지 밝히는 일을 하면서도 성차별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고 머리말에 고백합니다. 하지만 작은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이 그를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변화과정과 거기 동참한 다른 남자들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는 스스로를 '선한 남자'로 규정합니다. 말하자면 여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의도적으로 상처주지 않는 착하고 평범한 남자라는 겁니다. 그는 남녀차별 없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나쁜 남자'나 '여성'보다 자신과 같은 '선한 남자'들이 먼저 변화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결론에 이르게 된 여정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모든 문제는 남자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거나 유소년 시기에 어떻게 남성성이 잘못 형성되었는지, 남자가 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통찰도 인상적입니다.

한 남성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때리면 형사법원으로 보내지지만, 아내를 때리면 가정법원으로 보내지는 불편한 진실들도 다루고 있지요. 무엇보다 남성이 맨박스에 갇히면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지도요.


'남자로서 가질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은 지키되 남성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돌아보자'

신문이나 SNS의 책소개처럼 한 줄로 요약하니 정말 헛헛하네요. 풍성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드문드문 옮기지도 않으렵니다. 같은 이야기도 각자 와 닿는 지점이 다를테니까요. 지인들과 가볍게 건낼 수 있는 화두에서 묵직한 논제까지 한숨에 이끌어가는 저자의 솜씨도 직접 음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책의 주 독자는 '선한 남자'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두께도 얇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책 한번 읽어 봐. 두껍지도 않고 재밌어'라고 권할 수 있게요. 저도 읽고 나니 한명쯤 전도(?)하고 싶어졌어요.

마침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는 걸 보고 무슨 책인지 궁금해했거든요. 어떤 단락에 대해서는 날을 세워가며 논쟁도 하고, 생각보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놀라기도 했지요.


지금 그 '선한 남자'도 읽고 있습니다. 다 읽고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이 책을 통해, 그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좀더 자유로워지길 기도합니다. 그래야 나쁜 남자들도 변화할 수 있고, 여자들도 더 안심하고 함께할 수 있을테니까요.


맨박스에서 나와, 같이 행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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