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액티브하지 않다가 가서 갑자기 액티비티하려고?
출발 한달 전, 호텔과 항공권 예약은 마쳤지만 일정은 막연했다. '휴식과 활동을 적절히 섞겠다' 정도? 인터넷과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모았다. 그렇게 모인 놀 거리-할 거리는 아래와 같다.
- 서핑
- 투어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 같은 액티비티가 포함된 자연경관 / 폴리네시아 컬쳐 센터나 사탕수수 박물관 같은 실내공간)
- 쇼핑
- 스파, 마사지
- 맛집
- 현지 스냅
- 와이너리 투어
- 유람선 (크루즈 갈라쇼 등등)
- 민속 공연과 식사를 합한 디너쇼
- 본격 해양스포츠 (제트스키, 윈드서핑, 바나나보트, 범퍼튜브, 스노클링, 카누, 수상 발리볼, 터틀 와칭 크루즈)
휴우~ 많다. 겨우 일주일 남짓 있을 거고 시차 때문에 하루이틀은 정상 컨디션도 아닐텐데... 직장인의 여행은 여유라고는 짤래도 짤 게 없는 마른 수건 같다.
평소 '운동하면 늙는다'는 개똥철학을 가진 나로서는 지나치게 활동적인 일정이 부담스러웠다. 본격 해양스포츠는 '얘들아 나는 니네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름만 봐서는 모르겠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찾아볼수록 구분이 더 안 되어 '물에 들어가서 노는 거'로 갈무리.
혼자 가면 내 맘대로 하면 되지만 일행과 함께라면 조정을 하기가 만만치 않다. 자유여행의 최대난관, 결정장애와 다시 만나는 대목이다.
난 각각의 섬에서 3~4일을 보낼 거고, 이동 이슈가 없는 이틀째에만 반나절 정도의 고정일정을 넣었다. 나머지는 모두 현지에 가서 컨디션과 당일의 기호에 맞게 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루즈해질때쯤 살짝 빡세고 대체로는 여유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정이 고민된다면 아래 체크리스트를 한번 살펴보시압. 모든 여행에 적용되는 질문이지만 하와이 맞춤형으로 조금더 들어갔다.
1. 나는 저질체력인가?
여행을 가면 평소에 비해 체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100% 여행뽕이다. 무리한만큼 여행 중이나 후에 대가를 치른다. 그러니 욕심 부렸다 돈 날리고 몸 상하지 말고 '평소' 체력을 기준으로 일정을 짜자.
일행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정적이면 누군가는 따분하고, 동적이면 누군가는 부대낄테니까.
2. 나는 태양을 좋아하는가?
하와이는 날씨가 변덕스럽고 햇빛이 매우 강하다. 미세먼지를 통과한 한국 햇빛과는 차원이 다르다.
태닝을 즐긴다면 한낮이 야외활동에 적합한 시간이다. 반면 나처럼 빨갛게 익는 스타일이라면 피하길 권한다. 선블록 신경쓰느라 뭘해도 스트레스받는다.
햇빛에 취약해도 하와이에서 뭐하고노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가 뜨기 전 이동해서 일출을 보거나, 밤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고 (바다는 위험) 실내활동을 하거나, 차로 이동하거나, 숙소에서 쉬는 등 나름 즐길 방법이 많으니.
3. 나는 계획적인 사람인가?
일정이 안 정해진 상태를 어떤 사람은 불안해하고, 어떤 사람은 편안해 한다. 나는 숙소와 동선은 얼추 짜는 게 안심되고 세부 일정은 자유로운 게 좋다. 일정은 선택지만 사전에 확보하고 당일에 결정하거나 새로운 현지정보를 수집해 대응하는 편이다.
패키지를 못 간 것도 그래서다. 자유일정은 말 그대로 개인이 선택하는 거지만 어쨌든 사전에 정해서 지불하고 예약해야한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예약을 변경하거나 수수료를 내야하는데 여행 중에 그런 데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사전에 조사한 꺼리들 중에 렌트카나 크루즈, 이웃섬투어, 스냅촬영은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반면에 서핑, 마사지, 와이너리 투어, 맛집(선셋 제외)은 현지에서 결정해도 충분했다.
4. 식사가 우선인가, 활동이 우선인가?
나는 활동이 우선이라, 밥은 배가 고프거나 중간중간 짬이 나면 먹는 편이다. 물론 때로는 식사 자체가 중요한 활동이라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활동이 우선이다.
오아후 섬은 식사할 곳이 많으니 크게 문제될 것 없지만 마우이 섬은 식사할 곳이 한정되어 있고 마을 사이가 꽤 멀어서 동선을 짤 때 이 대목을 감안해야한다. 활동이 우선이라면 음식을 포장해서 야외에서 먹을 준비하는 게 좋다. 마트가 흔치 않으니 물도 넉넉히 챙기자.
5. 관광인가, 여행인가?
우리네 휴가는 여행보다 관광에 가깝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압축적으로 현지문화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끌리기 마련이다. 하와이의 경우, 폴리네시안 컬처 센터나 각 호텔에서 마련한 디너갈라쇼, 크루즈 선셋 투어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난 정해진 프로그램보다는 우연한 경험을 즐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일체의 프로그램은 뺐다. 패키지로 가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기도 하다. 프로그램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묶어서 패키지로 가는 게 동선, 비용, 신경쓸 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일정의 길이는 관광인데 여행 스타일로 다니니 몸 풀릴 때쯤 돌아와야 해서 아쉽긴 하다. 다녀와서 '가서 뭐가 재밌었어?'라는 질문을 받고 딱히 내세울 게 없을 때도 많다.
이번에도 그냥 내가 평소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하와이(무스비, 우쿨렐레, 현지인들의 알로하 정신?)와 만나고 왔다.
이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