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김태형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공부

by 이진희

‘망치로 머리를 까서 죽여버리고 싶었어’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마주 앉은 20대 손님이 말합니다. 그 후로도 식사하는 30분 남짓, 수위가 이와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을 말들을 듣고 있노라니 냉면발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어요.


‘공부를 안 해서 그렇게 되었으니 존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전화상담원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기사를 중학교 다니는 녀석과 같이 보고 생각을 물어보았습니다. 따뜻하다 여겼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이 순간에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어요?

‘그런 말 하면 못 써’

‘그래도 사람을 존중해야지’


바람직하지만 허망한 말을 해주는 대신, 저는 이 말로 표현된 그들의 무기력함과 분노를 같이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자유롭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상태로 오래 살아오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야 터져나오는 한 마디.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말을 하는 이들에겐 설교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좌절되었기에 저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관심과 충분한 공감 말입니다. 문제는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거겠죠. 시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나날이 사회가 폭력적으로 바뀌어간다는 걸 실감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심리학자답게 다양한 자존감의 개념부터, 자존감이 심리학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었는지, 어떻게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짚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지루하거나 불필요하지 않아 책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자식 세대의 폭력적인 말을 화두로 내놓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존감 낮은 부모 세대가 있습니다. 현재 부모인 세대들은 자존감을 키울 겨를이 없이 자랐고, 그런 채로 부모가 된 상황에서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 없는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나 국가가 육아와 교육을 부모들의 몫으로 돌려 소위 ‘부모 때려잡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채로는 참담한 현실을 바꾸기 더욱 어려워 질 거라고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비유하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총 쏘는 훈련을 시키지 말고 자유롭게 놀게 해주라는 조언을 듣고 문을 열면 다시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책임과 의무를 부모들에게만 돌리는 것도 경계합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자녀들을 존중하고 자유를 허락한다고 알려진 북유럽 부모들은 본성이 착해서 아이들을 어질게 대하는 것일까? 반대로 한국의 부모들은 본성이 악하거나 무슨 억하심정이라고 있어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우선 북유럽 국가들은 소득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직업을 고르는 것이 생존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진로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차별하고 무시하지 않을 수 있지요. 여기에서 자존감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한국은 놀이나 조기사교육, 진로 선택, 직업 선택 등의 문제에서 부모가 자녀의 결정권을 허용해주지 않는 편입니다. 거기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몰라도 그 외의 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마구 혼내면서, 공공장소에서 뛰어다녀도 제지하지 않는 식의 교육으로는 사회가 안전해질 수 없을 거라고요.


비단 육아 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학과 자기계발 분야에서 자존감과 관련된 책이 엄청나게 팔리지만, 책 속 이야기일 뿐 현실은 그대로지요.


대안으로 저자는 '사람의 가치를 사회적 쓸모로 평가하자'고 주장합니다. ‘사회적 쓸모’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확 와닿지 않았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자존감 확립에는 반드시 타인들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부터 어렴풋이 개인과 관계(사회)의 맥락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자존감의 생성단계와 유지단계, 두 가지 측면에서 관계나 사회의 역할을 떠올렸습니다.


나혼자 애써서 쌓은 자존감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써보고, 여행을 떠나 나 자신에 대해 내가 고민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에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깨지거나 일그러져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비춰 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책하고 위축됩니다. 나를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해주지 않고 돈이나 외모 따위로 평가하는 불량 거울은 자존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죠. 아래 대목에서 저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자존감 확립과 향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건강한 타인들 혹은 사회집단이다. 우리에게는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존중해주며 건강한 신념과 가치관을 나와 공유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동료나 조직이 필요하다.


저자는 묻습니다. 아무리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책을 읽고 노력을 해도, 상담실 밖을 나와 세상에서 여전히 서로에 대해 평가하고 비난하고 깎아내린다면? 과연 혼자만의 노력으로 자존감이 키워질 수 있을까?


그리고 주장합니다. 혼자서 자기 수련을 열심히 해봤자 나와 타인을 올바른 기준으로 평가하고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와 실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오히려 거듭 이야기했듯 개인의 자존감만 더 상처받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요.


자존감을 쌓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굳이 노력하고 지식을 습득해야만 가능하냐는 반론에 대해 저자는 적어도 현재의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어지간한 신념 없이는 사람을 부당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의 잘못된 통념과 가치관에 맞서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면 혐오문화와 가짜뉴스의 맥락이 보입니다.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 무능력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거대한 권위를 등에 업고 약자를 공격하는 행위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극우 보수 단체에 참여하는 노인들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그들은 대부분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존재감 없이 살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가짜뉴스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설명합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에 따르면, 내가 나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믿으면 불행해지는 일만 골라서 하게 되어 실제로 불행해지게 됩니다.

이 예언을 처음으로 제창한 이는 20세기 초에 활약했던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인데요,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객관적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석한 상황에 반응하기 마련이며 그러한 반응이 모이다 보면 해석한 그대로 상황이 전개’됩니다. 사례로 어떤 은행을 듭니다. 평소 건실했던 이 은행이 곧 파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사람들은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실제 은행은 파산하게 되지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여기서 존중받고 있음을 느낄 필요가 있다

(맥그래스, 알리스터&조애나 /윤종석 역 <자존감> 2003, IVP, p.190, 이 책 p.222)


혐오문화와 가짜뉴스를 볼 때마다 이 책에 인용된 이 구절을 떠올립니다. 기우인줄 알면서도 첨언하자면, 그들의 주장과 표현과 내용을 존중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공감에 대한 흔한 오해-내가 공감하면, 내가 니 뜻에 동의하는 것-처럼 그 자체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이면에 존중받지 못한 자아를 염두해 보자는 겁니다.


우리는 수용되고, 사랑받고, 존중되기를 원합니다. 저자는 난민을 예로 듭니다. 어떤 난민이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칠까요? 일단 물리적으로 그 공간에 들어가 살 수 있고(수용),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고(사랑),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인정(존중)받아야겠지요. 우리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또한 관계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도 같을 겁니다.


인간을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자존감도 없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병든 한국 사회가 급진적인 변혁을 이루지 못하는 이상,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고통은 거의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음울한 예언도 내놓지요.

사회악을 타파하거나 개혁하기 위한 실천에서 발을 빼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실천,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실천을 방기함으로써 자기개념이 악화되고 자기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되면 자기감정도 악화된다는 것이죠. 마치 정의의 전장에서 도망친 전사의 자존감이 전장에 복귀하지 않는 한 끝없이 추락하듯이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의 자존감 역시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기 마련이라고요.


한국 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싶다면, 싸워야 한다!


저는 저자가 이 책을 책상머리 앉아 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안에 머물고, 다양한 사건과 현상을 직면하며 용감하게 한 줄 한 줄 채웠음을 느낍니다. 저 역시 제가 만드는 콘텐츠가, 제 말과 행동이 그렇길 바라고요.


에필로그를 인용하며 마무리합니다.


다른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 왜 당신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다른 심리학자들처러 열심히 심리 치료를 하고 마음 수양을 하면 자존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설파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크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말은 가능한 한 하지 말고, 듣기 좋은 위로의 말을 많이 해야 책이 잘 팔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과 타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무엇보다 내 자존감부터 손상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년 전으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