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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Mar 01. 2019

동정과 공감은 달라요

청취자를 화나게 한 어느 진행자의 눈물

동정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다 - 수전 손택


라디오에서 사연을 소개하면 청취자들의 격려와 응원 메시지가 날아듭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음씀씀이와 바쁜 와중에 정성들여 보내주시는 문자에 제작진은 늘 감동하지요.


때로는 사연을 소개하는 진행자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합니다. 어느 진행자는 그 정도가 유달랐습니다. 진행자가 두 명이라 그 진행자(A)가 목이 잠길 정도로 울면, 다른 진행자(B)가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곤 했습니다. B 역시 마음은 따뜻했지만 비교적 털털하고 침착한 편이었지요. A가 우느라 청취자의 글을 더이상 읽지 못하면 B가 나머지 문장들을 읽어내려갔습니다. 부끄럽지만 나역시 공감에 대해 별 고민이 없던 때였습니다. A가 그저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물이 많다고만 생각했어요. 다만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두사람의 대화가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B는 A에게 말했습니다.


"너 지금 청취자 감정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불쌍해서 우는 거지? 그거 니 감정이야. 동정으로 울지 마"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말이 오래토록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그저 단호해서 잊혀지지 않나보다 했지요. 공감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뒤늦게 깨달았어요. 상대의 이야기에 내 경험이 되살아나고, 감정이 흔들린다고 공감이 아니라는 것을. 더구나 감정의 요동을 상대 앞에서 표현하는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요. 심지어 무례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B는 A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요.


물론 상대의 사연에 내 기억이 되살아나고 내 감정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걸 공감이라 착각하지는 말아야겠죠. 섣불리 드러내는 것도 주의하고요. 그저 ‘아이고~ 저 사람 말이 내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구나’ 알아채면 족합니다.


내 감정임을 알아채고 내려놓은 후에 어떻게 해야할지는 앞으로 같이 연습해보기로 해요. 정말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온 존재로 함께하고 싶다면 감정의 무게추를 다시 상대에게 옮기려고 애써보세요. 그 일로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욕구가 충족 혹은 좌절되었는지 물어봐주세요. 그저 함께 머물러주세요.


진행자 A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청취자들의 꾸준한 항의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불편하다' 수준이었지만 점점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공감을 연기한다'거나 배부른 사람이 동정하면 모를 줄 아느냐. 불쾌하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생방송 중에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어느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던 중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꺼낸 말입니다.


‘아! 이 분,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A는 오래지 않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습니다.




*서두에 인용한 수전 손택의 말은 '연민'으로 해석하기도합니다만 저는 '동정'으로 의역했습니다. 연민(Compassion), 동정(Pity), 동감(Sympathy), 공감(Empathy) 등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음에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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