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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Mar 20. 2019

충조평판, 왜 하는 걸까요?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겠는데 습관적으로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당신에게

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에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충조평판'을 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충조평판'은 충고-조언-평가-판단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인데요.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충고나 조언, 평가와 판단은 공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거죠.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에서도 공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시합니다. 각 장애물들의 사례를 들려드리려고 하는데요, 이 사례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내가 상대에게 이런 피드백을 주었던 기억에서 오는 미안함

2) 상대가 내게 이런 반응을 보였을 때의 불편했던 느낌


1)번을 선택해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가능하면 2)번의 마음가짐으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려요. 이런 말을 들었을 기분이 어땠는지, 고민이 해결되고 힘이 났는지를 떠올리면 앞으로 하고 싶은 선택이 더 명확해지니까요.


충고/조언/교육
그 나이땐 한 번쯤 그런 생각할 수 있지
상담을 받아 봐
그런 문제는 비폭력대화 책을 보면 도움이 될 거야     

분석/진단/설명
네가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었잖아
너 자주 그런 거 보니 우울증 초기 같아
   

바로잡기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감정의 흐름 중지/전환
세상에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조사/심문
언제부터 그랬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누군데?
     

평가/빈정대기
넌 너무 나약해. 그래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래
거 봐.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
     

한 번에 자르기
됐어. 야, 다 그렇게 살지. 술 한잔 하자!
     

위로하기
너 너무 힘들겠다. 듣는 나도 이런데 넌 오죽하겠어
세상이 그래서 그래. 네 탓이 아니야.
     

내 얘기하기/맞장구치기
그래, 나도 그렇잖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부장은 더 심해.
     

동정/애처로워하기
이제 큰일 났다. 너 어떻게 사니?
어쩜 그렇게 일이 꼬이냐. 정말 안 됐다.
우리는 건강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떠세요? 정말 자주 듣는 말들이죠. 내가 상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상상하면 고맙다거나 힘이 나시나요? 무기력해지고 더욱 낙심되거나 '괜히 말했다' 싶으실 거예요. 반대로 이런 말들을 늘어놓은 기억도 떠오르시죠? 비폭력대화를 배우기 전의 저는 무척 자주, 많이 했어요. 친구에게, 동료에게, 가족에게.


우리는 왜, 장애물들을 자꾸 꺼내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들은 아래와 같아요.


1. 습관적으로. 듣고 배운 게 저런 것들이라서

2. 상대를 돕고 싶어서

3. 상대가 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가 기여하고 싶어서

4.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1번을 제외하고는 놀랍게도 좋은 의도가 깔려있답니다.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은 건 아니지만요. 저런 말을 들은 상대가 내게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거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나를 인정해주는 경우는 드물어요. 우리가 저런 말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요. 돕고 싶고, 내가 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며 하는 말이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니 놀라운 역설이죠.


앞으로 저 장애물들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올 때마다 잠시 멈춰보는 건 어떨까요? 그저 상대의 느낌과 욕구에 함께 머물려고 노력하면서요.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안전하게 충분히 할 수 있을 때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상황을 바꿀 힘을 얻는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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