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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ptember Sky Aug 22. 2019

남자는 하나도 모르는
여자의 마라톤

남자와 다른 여자의 달리기

  지금 생각하면 아득히 오래전인데도 첫 풀코스 완주 경험에 대한 기억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2014년에 마라톤에 입문해 풀코스 42.195km를 15번이나 완주한 자칭 베테랑 러너다.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높고, 바람은 시원한 가을날 나만의 산책로인 영동 3교 주변 양재천을 걷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과 함께 하루 종일 가게일을 같이 하니 늘 심신이 힘든 날이다.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여유 있게 걷는 중에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두 줄로 나란히 줄을 맞춰 중년 남녀 한 무리가 옆을 스치며 뛰어간다. 보니까 마라톤 동호회다. 조깅 중인 모양이다. 남자나 여자나 다들 밝은 얼굴에, 몸매도 탄탄하고 건강해 보였다. 거기다가 즐겁기까지 하다니, 이건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갑자기 '나도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소매에 가까운 상의 뒷면에 동호회 이름을 검색하고 동호회에 가입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그리스 평원 위를 달리던 병사가 나의 마음에 뛰어들어왔다. 


  처음엔 운동하는 즐거움과 힘든 기억뿐이었다. 점점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거리가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붙고, 생활에 활력이 되었다. 40대 초반에 탄탄하고, 날씬한 몸매와 매끈한 꿀벅지는 동갑인 친구들이 봐도 감탄을 자아냈다. 체력이 뒷바침되니 많은 일들을 무리 없이 해내게 되었고, 무엇보다 일상의 지치고 넌더리 나는 기억들을 달리기에 몰입해 많이 잊을 수 있었다. 나의 첫 풀코스 완주는 늦은 감이 있다. 착실히 단계적으로 훈련을 했지만 달리기에 많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드디어 마라톤을 시작한 지 만 2년 되는 날 백제 공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4시간 41분의 기록으로 생애 첫 완주를 하였다. 모든 도전이 극적이듯이 나의 생애에 극적인 장면을 추가했다.


  여자의 달리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특별한 도구나 복장이 필요하지 않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 생긴다. 심리적, 육체적으로 여자의 육체는 여자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면이 있다. 생리 때, 임신 중인 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자는 항상 달리기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운동한다. 하지만 기존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한계와 제약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나 역시 조금씩 마라톤에 대해 배우고, 달리기에 적용하고 확인하면서 여성 마라토너로 성장했다. 몸에 관련된 의학적인 문제도 많은 검증과 연구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 처음 달릴 때 선배들이 가르쳐 주지 않은 일들과 시행착오로 배운 것들, 그리고 꼭 알아야 할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을 말하고 싶다. 

 

  보통 남자들은 반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달리면 된다. 자세가 바르지 못해 피부가 계속 스치는 다리 사이나 옆구리에 바세린을 바른다. 속옷이나 운동복 솔기에 쓸리지 않도록 속옷을 뒤집어 입기도 한다. 장거리 러닝의 경우에는 가슴 젖꼭지 위에 대일밴드나 3M 테이프를 붙인다. 남자가 확실한 준비를 해야 하는 때도 있다. 남자의 예민한 주요 부위가 장시간 러닝에 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콘돔을 끼고 달리는 남자 러너도 있다. 간혹 콘돔이 찢어져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비닐봉지를 구해서 싸매든지, 피가 날 정도로 쓸리게 두든지, 마라톤을 포기하든지 결정해야 한다. 남자 러너에게 필요한 것보다 여자의 달리기는 몇 배나 많은 준비와 대비가 있어야 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여자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선배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 십여 년 전에는 대비할 만한 물품도 거의 없었다. 달리면서 알게 되었고, 나중에서야 책이나 기사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여자의 달리기 복장은 남자와는 다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평소 입던 브라를 착용하고 달리다가 출렁이는 가슴 주위로 피가 맺혀 속옷도 입지 않고 다닌 적이 있다. 쓸린 것도 모르고 하프코스(21.0975km)를 달리고 나서 경기장 옆의 분수대 물에 풍덩 빠졌을 때 그 쓰라린 고통은 오직 여자만 알 수 있는 고통이다. 여자는 반드시 일반 브라가 아니라 스포츠 브라를 해야 한다. 가슴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가슴이 작든 크든 스포츠 브라로 출렁이는 가슴을 지지하고 달려야 한다. 스프링이나 단단한 지지대가 많이 들어있는 제품은 장시간 달리면 가슴을 다치게 하니 피해야 한다. 자신의 가슴사이즈에 맞도록 섬세하게 조절되는 부드러운 스포츠 브라를 선택한다. 보통 여성 마라토너는 얇은 속브라를 입고,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고 나서 탱크탑이나 티셔츠까지 보통 2~3개를 겹쳐입는 데 여간 부담되는 일이다. 사실 스포츠 브라든 탱크 탑이든 속에 감추지 말고 자신이 편하다면 얼마든지 드러내 보이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러닝이 인기다. 그들의 복장과 컬러는 황홀할 지경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원하는 삶을 사는 용기가 부럽다.



  여자가 매달 겪는 생리 전후의 달리기는 또 다른 고민이었다. 결론은 생리중에도 운동을 하는 게 몸에 좋다는 것이다. 아이 둘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나는 아직 몸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여자였다. 적당한 달리기는 오히려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생리통을 완화시키거나 복부비만을 해소시켜, 복부비만으로 인해 심해질 수 있는 생리통도 예방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달리기는 운동중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 여성의 자궁건강을 잘 점검할 수 있게 해 주고, 우울함이나 식욕이 저하되는 좋지 않은 기분조차도 상쾌하게 해 주니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지금은 예전처럼 생리대를 착용하고 속옷을 몇 겹이나 입고 달리기를 하던 때와는 다르다. 피임약이나 생리주기를 바꾸는 약을 복용할 필요도 없다. 소형 생리대와 탐폰은 훈련이나 심지어 대회 때도 안전한 역할을 해준다. 


  당신이 여성 러너라면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달리는 일은 남자나 여자에게 위험하다고 모두 알고 있다. 주위의 소리와 차단된 환경은 언제든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을 놓칠 수도 있다. 간혹 운동을 꾸준히 하는 러너는 야간에 달리거나, 외진 곳을 달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혼자 달리다 보면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거나, 계속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러닝으로 다져진 미모와 몸매를 갖는 여성 러너는 간혹 일어나는 일이다. 무엇보다 여성 러너는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무엇인가 위험하다는 육감을 믿고, 실제 위험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여성 러너의 달리기 안전수칙은 익숙한 장소에서 동료와 함께 달리기, 달리기 시간과 코스 정보를 동료에게 알리기, 노출이 심하지 않은 눈에 잘 띄는 복장하기, 이어폰을 사용하지 말고 오감을 열어 주위 환경을 알기 등이다.


                      이어폰은 운동장이나 트랙, 잘 아는 코스에서는 좋지만 도심에서는 위험하므로 금지


  아래는 '여자의 달리기'(클레어 코왈칙 저, 지식공작소)에 나오는 꼭 필요한 의학 지식을 참고한 것이다. 여자는 모두 다르다. 마라톤 선수와 일반인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서, 몸 상태에 따라 다르다. 자기에게 맞고 가장 편한 옷과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이 최선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번 30분 이상은 반드시 운동해야 한다. 당신이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고 싶은 빠르기로, 길이 있는 지구의 어느곳에서나 달리는 당신은 가장 멋진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見河- 


● 과학적으로 운동이 월경 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PMS)의 통증을 없앤다는 증거는 없지만, 많은 여성들이 생리 기간이 닥쳐서 몸이 붓고 아파 달리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일단 달리러 나가면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고 보고했다. p.22

● 여성들은 남성보다 헤모글로빈을 평균 10퍼센트 적게 갖고 있는데, 이는 폐에서 근육으로 가는 산소가 10퍼센트 적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여성들은 심장이 작기 때문에 한 번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몸으로 뿜어지는 혈액량도 적다. p.33

● 여성들은 출산에 알맞게 골반이 넓기 때문에 대퇴관절 바깥 면과 무릎의 위치에 따라 생기는 Q각(Quadriceps Angle, 대퇴사두각)이 크다. 그 결과 과회내(착지할 때 발이 너무 안쪽으로 도는 것)가 되어서 무릎의 문제와 정강이 통증, 그리고 피로골절을 포함하는 각종 손상이 유발될 수 있다. p.35

● 여성주자들은 남성들에 비해 철분이 잘 결핍된다. 이유는 월경으로 혈액이 소실되는 것뿐 아니라 적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흡수 가능한 철분의 최고 공급원인 육류도 덜 먹기 때문이다. p.114

● 규칙적인 달리기는 불필요한 체중 증가를 막음으로써 수면과 식욕을 개선하고 임신성 당뇨를 예방하기도 한다. 게다가 임신 중에 운동을 한 많은(전부가 아니라) 여성의 경우 출산이 더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p.180

● 스포츠의학 임상의들은 종종 여성들에게 더 흔한 ‘끔찍한 세 가지 징후(Terrible Triad)’라 불리는 상태를 언급한다. 이것은 넓은 골반이 더 안짱다리(Knock-knee)를 유발하고, 정강이뼈가 안쪽으로 휘는 경향이 있고, 발은 편평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치기 쉽고 달리는 동안 무릎에 압박을 증가시킨다. p.390

● 여성이 부상을 쉽게 당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관절의 느슨함 때문이다. 특히 배란기 즈음에 증가한 에스트로겐 분비량이나 임신 중의 호르몬 생산과 분비가 관절 주위의 인대를 느슨하게 한다. p.390 (yes24.com,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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