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

by girok

나는 그저 소로요.

소로에서 태어난 작은 어둠일 뿐.

잉태란 그 자체로 빛이고 축복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제게는 태어남이란 축복은 온전히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매일 아침 힘겨운 눈을 뜨는지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요즘입니다.

나의 삶에도 분명한 것들이 있었는데, 어느샌가 잎 하나 없는 나뭇가지, 이것이 과연 나뭇가지가 맞는가 형태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막대기와도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직 그은 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그저 고난과 인내의 연속, 존재,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삶이라 하였는데, 어쩌면 저는 실존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존과 실존 그 사이에서 어쩌면 저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나뭇가지 누군가 만지기도 전에 부서져버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형태를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삶에 의미를 찾고 붙이고 부여하려고 하면 그 삶은 끝이 없지요. 그러니 그저 의미를 내려두고 제3자의 시선으로 존재를 봅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지독하고 고독한 슬픔들이 모여 만들어낸 허상 저는 그저 거무스름한 허상들 옆에 누워 무의 소리를 듣습니다.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날이 풀렸다고 하여 따사로운 햇볕을 쉬이 믿지 마시고 기대어 잠들지 마시고 부디 따뜻하게 이 계절을 무사히 보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저 이 계절의 끝에서

당신들의 안녕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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