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직장인이 되고 나는 바보가 되는 거 같아

Why라고 질문하기

by 지젤리

갓신입 때 나는 맹랑한 편이었다. MZ 소리 들을까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어떤 업무를 맡게 되거나 절차를 설명받으면 '왜'에 대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는 삐딱한 마음보다는, 그냥 물음표 살인마였다. 경력이 많은 선배들은 업무를 나눠줄 때 피곤한 눈과 바쁜 마음으로 업무 방법과 절차에 대해 냅다 줄줄이 설명했다. 나는 한쪽귀로는 그 얘기를 듣고 받아 적으면서도 '이 업무는 왜 하는 걸까?'라는 임팩트에 대한 궁금증과 절차의 효율성에 대한 스스로 질문하곤 했다. 산업도 직무도 잘 모르는 신입의 질문이 얼마나 날카로웠겠냐만은 난 그때의 내가 좀 그립다.


조직의 탑다운 방식에 익숙해진 나는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아묻따' 직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회사는 꽤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다. 지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군대와 흡사했다는 묘사가 나올 정도로 상사의 말이 곧 법인 사회다. 처음엔 나도 내적으로 반항하기도 하고, 부당함에 대해 상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며, 회사와 나를 분리시키려고 끈질긴 노력을 했다.


의문이 들 때마다 나는 더 힘들었다. 이건 비효율적인데,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은데, 부당한 대우인데, 잘못된 결정인데. 나 혼자 납득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남들은 다 아무 생각 없고 멀쩡해 보여서 더 힘들었다. 되려 내가 적응을 잘 못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만 정상이야? 아님 혹시 나만 비정상인 건가?


나 또한 뇌를 빼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그런가 보지', 시대를 퇴행하는 규칙이 생겨도 '그런가 보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런가 보지'.


포기하니까 편했다. 마음도 정신도 편안했다. 예전에는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와 의문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이제는 괜찮았다. 그냥 그렇다는 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게 가스라이팅이 아닐까란 생각이 어렴풋이는 들었으나 그걸 파헤치면 내 정신과 마음이 더욱 피폐해질 거 같아서 그냥 내버려 뒀다. 어차피 여긴 다 이런 걸,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어. 불쌍한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침착하고 평화롭다가 갑자기 울컥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다. 억울하거나 화나거나 슬픈 감정들이 시커멓게 얽히고설켜 튀어나왔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거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이니 물밖에 내놓은 금붕어처럼 혼자서 퍼덕거렸다. 조용히 고통스러웠다.


종종 이런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덮칠 때마다 나는 고요히 앉아서 생각한다. 왜 이런 감정이 갑자기 들었을까. 예전에는 why를 자주 생각하다 보니 내가 내 마음을 잘 알았는데 이젠 잠깐의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 상태로 순응하니 어디서부터 불편하고 잘못돼서 이 상태까지 와버렸는지를 알 수 없었다.


가끔 방송기사를 보다 보면 원인 모를 분노에 찬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예컨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에 불을 지른 어떤 50대, 사회를 비난하며 묻지 마 폭행을 한 케이스가 그렇다. 둘 다 요구하는 바와 실제 폭력을 행사한 타깃이 다르다. 정말 정치인의 퇴진을 원한다면 시위를 하면 될 것이고 사회와 불우한 가정환경이 문제였다면 사회 구조를 탓하거나 사실 부모를 원망하는 게 더 적확할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젠 좀 알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 상태와 감정을 읽어내지 못해서, 억눌린 우울감과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당장 눈앞에 보이고 만만한 상대에 폭력적으로 발산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른바 굴절혐오이다.


조금 비약이 있지만, 정말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나쁜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그걸 애꿎은 약자들에게 풀고 탓하는 비겁하고도 못난 사람은 되고 싶지가 않다. 품위를 지키는 어른으로 자라나기 위해 나는 고통스럽더라도 Why를 되묻는 연습을 다시금 해보려 한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난 택했다. 미움받고 괴롭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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