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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시감 Oct 12. 2023

망가뜨린 침대는 왜 안 사주는데!-1

여자는 짜게 군 남자를 욕한다

마흔 넘어 3번의 연애를 했다. 3번의 연애 중에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또 가장 지우고 싶은 연애는 바로 첫 번째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3번이나 했으니 구질구질하고 웃픈 사건이 많았다. 


난 결혼 적령기라고 할 수 있는 30대 중후반에 연애를 거의 안 했다. 서른 다섯에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 나는 적잖이 실의에 빠져 있었고, 또 누군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피곤하고 귀찮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1년, 2년 지나다 보니 세월은 어느덧 흘러 나이 마흔이 넘었고, 어느 날 ‘이러다 결혼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소개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동안 주변에서 소개팅을 시켜준대도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한답시고 튕기던 내가 마흔 넘어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하니, 찐친들은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예쁜 시절 다 보내고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 늙은 꽃’이라느니 ‘애들처럼 자만추 

타령하더니, 이제는 네가 알아서 자급자족해라’, 

‘그래도 오십이 아닌 마흔 넘어 현실 파악해서 다행이다’ 등 팩폭을 날렸다. 




그래도 다행히 지인들은 “여우처럼 남자 홀리는 재주도 없는 니가 어딜 가서 누굴 어떻게 만나겠어!”라며 

사돈의 팔촌까지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있는지 수소문 해 소개팅을 해줬다. 그리고 세 번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소개팅을 흘려 보내고, 네 번째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 만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5살 많았던 그 사람은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일단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직장인이 회사에 

나가듯 4~5일을 술집으로 출근을 했고, 일단 술이 들어가면 취할 때까지 마시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그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그 사람을 잡아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최악이었던 건 술에 취하면 전화를 거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처럼 일관되게 취한 밤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나마 덜 취했을 때는 하고 싶었던 말을 다정하게 

얘기했지만 대부분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옹알이 하듯 쏟아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전화를 받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끊으면 또 다시 전화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게다가 다음날 자신이 전화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제대로 못했다. 사업을 하고 있었던 그와는 달리, 직장인이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전화로 인해 잠을 도둑 맞은 날이면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도무지 그의 술 사랑과 술 버릇을 고칠 수도, 또 고쳐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만난 지 2주 만에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오빠는 나랑 너무 다른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는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예상 못한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건지, 나를 만나 상기됐던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몇 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작고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리고는 말없이 술만 마시는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짠하고 쓸쓸해 보이던지… ‘이 사람 외롭구나. 외로워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마저 생겼다. 

물론 지금은 정신 차려서 안다(하하).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이었는지… 그래도 당시에는 만나고 넘어가야 하는 인연이었는지, “술을 줄여보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에 기대를 걸고 그냥 계속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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