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시감 Oct 13. 2023

망가뜨린 침대는 왜 안 사주는데!-2

여자는 짜게 군 남자를 욕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짐작하듯이, 이후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시는 횟수와 주량을 줄이는 것 같더니 한 달도 안 돼 원래 패턴대로 돌아갔다. 나쁜 습관일수록 빠르게 되돌아간다. 

반복되는 술 문제도 있지만 남자친구가 있는데 오히려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게 더 힘들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힘들 때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석사 학위를 받아 뿌듯할 때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위로가 필요할 때도 그는 내 곁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 이별을 고하면, 그가 몇 주 뒤 계속 연락을 해와 받아주는 상황이 반복됐다. 

문제는 나에게도 있었다. 그놈의 연민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들은 계속됐고, 그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이 있었다. 이혼 후 10년 넘게 혼자 살았던 그는, 나를 만나기 전 꽤 많은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너는 그 동안 만났던 여자들과는 다른 것 같아. 내가 너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고백을 했었고, 그의 친구들은 “00가 이번에는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바람둥이 00가 이제는 

정신 차린 것 같다” 같은 말들을 했다. 


이쯤에서 화제의 드라마였던 <스카이캐슬>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연장은 고쳐서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무시하고 차민혁 씨에게 끝까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을 통렬히 반성합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진 건 두 번째 이별 후였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그는 나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했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에 급기야 집으로 찾아왔다. 계속 눌러대는 초인종 때문에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집안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온 나는 화가 나서 열변을 토해냈다. 


“오빠,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우리 헤어졌잖아. 

오빠가 이러면 내가 너무 힘들어!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지금 이 시간에 찾아와 뭘 어쩌자고!”  


멀뚱히 서서 나의 열변을 말없이 듣던 그가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 정말 좋아했는데… 알지? 

내가… 요즘 너무 힘들어… 일도 잘 안 되고…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또 만나자고? 

또 만나도 또 같은 문제로 우린 헤어질 거야!” 


“아… 그래도 나는…”  


그는 목이 멘 듯 어렵게 입을 떼다 갑자기 바닥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울었다. 오십이 다 된 거구의 남자가 꺼이꺼이 서럽게 우니 ‘정말 안 좋은 일이 있는 건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더니 내가 앉은 침대로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내 옆 침대에 털썩 앉는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를 보니 침대에 앉은 채로 가라앉아 있었다. 

내 침대의 프레임은 나무로 만들어진 평상형이었는데, 어처구니없게 그가 앉은 쪽의 프레임이 부러진 것이었다. 그는 180cm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100kg에 가까운 거구였다. 아니 이게 무슨 시트콤 같은 상황이람…ㅠ 지금 저 뚱땡이 때문에 침대 프레임이 내려앉은 거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훌쩍이며 횡설수설했고, 나는 달래서 집으로 빨리 돌려보내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이전 03화 망가뜨린 침대는 왜 안 사주는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