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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Nov 29. 2021

우리 동네 해변은 내가 치운다!

봉그깅대회 1 - 준비

봉그깅대회가 내일부터 참가신청 오픈해요!


드디어 기다리던 봉그깅대회가 시작된다!

봉그깅, 생소한 단어 같아도 해변청소를 뜻하는 비치클린, 비치코밍, 플로깅과 같은 뜻이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여러 개~

봉그깅
'봉그기'라는 줍다의 의미를 가진 제주 방언과,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지칭하는 '플로깅(Plogging)'의 합성어


출처 : 디프다제주 @diphda_jeju


봉그깅대회는 2주 동안 봉그깅하고 싶은 곳에서 봉그깅을 하고 인증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참여하는 대회다. 대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품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니스프리, 톤28, 딜라잇풀에서 후원하는 상품을 내걸었다. 참가인원은 선착순 50명인데, 상품을 40명 가까이 주는 걸 보니, 치열한 경쟁의 대회이기보다는 '다 함께' 캠페인 같은 느낌이다. 시상 기준도 엄격하지 않은 것 같다.


상품? 사실 내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단지 계기가 필요했을 뿐!!!


나는 봉그깅대회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림, 김녕, 판포 같은 곳은 쓰레기를 주우러 열심히 다녔다. 판포나 한림 같은 경우는 편도 1시간이 넘는데, 가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쓰레기 줍는 시간보다 차 안에서 시간을 더 오래 보내기 때문에 효율도 안 좋고 배기가스로 지구를 더 망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었다.

그러면서 정작 내가 사는 동네, 가장 가까운 바다로는 쓰레기를 주우러 가본 적이 없다.


만약 봉그깅대회가 열린다면, 우리 동네를 치워보겠노라 다짐했다.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미리 김 빼지 말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철학핑계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우리 동네 해양쓰레기는 관심을 껐다. 

시작하면 진짜 완전 대박 제대로 할 거야!


봉그깅대회 참여 신청이 시작되기 1분 전에 알람을 맞춰두고, 정시에 신청을 완료했다. 이만큼 고대하던 대회인데, 참여를 못 하면 비극이니까. 완료됐다는 확인 문자가 없어서 조마조마 걱정했는데, 며칠 뒤 참가자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되어 그제야 마음을 놨다.



D - 1, 대회 시작 전 날

내일부터 봉그깅 시작이다. 2주 동안 열심히 쓰레기를 주울 생각인데, 요새 일정으로는 주말 밖에 봉그깅을 못할 것 같다. 퇴근은 5시인데, 일몰 시간은 5시 20분 정도다. 집에 오면 이미 해는 졌다. 해변엔 돌이 많고 조명이 없어서 쓰레기를 줍기 위험할뿐더러, 어두운 색깔의 쓰레기도 많기 때문에 수거가 힘들다. 해가 지기 전에 쓰레기를 모두 주워야 한다.


평일에 쓰레기를 줍기 위해선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봉그깅을 새벽에 하고 출근을 미루거나, 퇴근을 앞당겨 저녁 봉그깅을 하는 것이다. 봉그깅 후엔 바다의 짠 내, 쓰레기의 구린내, 축축한 땀내가 뒤섞여 환상, 아니 환장의 향을 내뿜기 때문에 샤워가 필수다. 아침부터 봉그깅 + 씻기 + 출근은 너무 힘들다. 마음 편하게 퇴근 후 운동 삼아 봉그깅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4시 퇴근을 위해 7시에 출근해야지!

엄청난 계획을 세워버렸다.


머릿속으로 봉그깅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내일 퇴근하고 바다로 달려간다, 근데 어디로 가지?

바다는 넓다. 우리 동네가 아무리 작다지만, 혈혈단신으로 2주 만에 동네 바다를 모두 훑기엔 무리다. 쓰레기 정보가 필요했다. 쓰레기가 많은 곳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세워 공략해야 한다.


그래서 답사를 하러 갔다. 우리 동네엔 어디에 쓰레기가 많을까?

내가 사는 곳은 신촌. 닭머르로 유명하고, 작은 포구도 하나가 있다. 올레길이 지난다는 것 빼고는 나머지 해변엔 특별한 것이 없다. 이번 기회에 해변을 쭉 돌면서 마을의 숨은 곳을 발견해본다.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아름다운 우리 동네가 이렇게 쓰레기로 넘쳐났었다니.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인 닭머르에 가장 많은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검은 현무암 위로 알록달록한 쓰레기가 제멋대로 빛나고 있었다. 쓰레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일부러 꾸며놨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해안이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보니 쓰레기가 갇혀 쌓였을 것 같다.


나는 답사를 바탕으로 우리 동네 쓰레기 지도를 만들었다.


신촌의 쓰레기 지도. 빨강 > 주황 > 노랑 > 연두 순으로 심각하며, 보라색은 대형 쓰레기를 뜻한다. 지도 왼편 닭머르 주변이 새빨갛다.


잔뜩 널려있는 쓰레기를 보니 내 열정이 활활 불타오른다.

내일부터, 다 조져주겠다!!!!



D - Day, 마지막 준비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건, 등 뒤에 20kg 배낭을 메고 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잠을 깨보려고 핸드폰을 만지다 일어났는데, 덕분에 침대의 무지막지한 중력에서 늦게 벗어났다. 업무를 할 때도 집중이 잘 안 됐다. 피곤해서...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오늘 봉그깅을 하려면 마지막 준비 단계가 남았다.


해양쓰레기를 마대에 모아두면, 그걸 누군가 가져가야 하는데 동/읍/면 행정복지센터에 수거를 요청해야 한다. 안 그럼 쓰레기는 외롭게 계속 그곳에 쌓여 있을 것이다. 쓰레기는 수거할 때 돈이 든다는데, 자원봉사의 경우는 알아서 처리해주는 것 같았다. 행정복지센터 담당자분이 좋은 일 한다고 응원해주셔서 더 힘을 얻고 전화를 끊었다.


자, 이제 정말 치울 일만 남았다. 오후에 고작 3시간 일하고 퇴근하는 발걸음이 어색했지만, 봉그깅대회를 시작한다는 벅차오름으로 회사를 떠났다.


첫 목표는 가장 사람이 많고 쓰레기도 많은, 닭머르이다.

우리 동네의 자랑, 닭머르. 색색 쓰레기가 참 아름답다, 참. 여기가 첫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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