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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Dec 04. 2021

그토록 열심히 쓰레기를 주운 이유

냐아아아옹

평소보다 1시간 일찍 4시에 퇴근하는 느낌은, 마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자세를 잡았는데 끝난 기분이었다. 좋은데?

해가 지기 전에, 봉그깅을 하기 위해 달려간 닭머르.

그곳에서 나는 봉그깅을 시작하기도 전에 감동해 버렸다.


이미 누군가 쓰레기를 치워놨었다.

누군가 어느 정도 치우고 간 흔적. 노란 마대의 상투가 참 잘 틀려있다.

베테랑이다, 이건 분명.

해양쓰레기를 버린 마대는 상투를 틀듯 안에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꽉 묶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일반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고, 안에 쓰레기가 강한 바람에 다시 날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있다. 그렇게 묶으려면 마대를 다 채우지 않고, 80% 정도만 채워야 한다.

해양쓰레기를 많이 치워보지 않은 사람 중에 꽉 묶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묶기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데도 이게 은근 힘이 많이 들어간다.


내가 오기 전에 봉그깅을 다녀간 사람은 완벽했다. 마대를 꽁꽁 싸매놓은 게, 분명 많이 해본 베테랑이다. 쓰레기차가 수거할 수 있도록 도로변에 놓아둔 것도, 경험이 느껴졌다. 덕분에 쓰레기로 범벅이었던 닭머르의 해변이 조금은 깨끗했었다.


아,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힘들면 도와주는 절대자 같은 존재가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 수북이 쌓인 쓰레기도 다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해보자!!! 쓰레기 다 치워보자!!! 가즈아!!!


허리가 아프네...

봉그깅을 할 땐 허리를 숙이지 않는 게 좋다. 되도록 스쿼트를 하듯, 허리는 구부리지 않은 채로 다리를 굽혀야 한다. 그래야 허리가 덜 아파서 오래 봉그깅 할 수 있다.

닭머르는 자갈밭이다. 쓰레기는 땅에 있기에 계속 땅을 향해 손을 뻗어야 했다. 다리만 구부린다고 구부리는데, 나도 모르게 허리가 함께 굽혀진다. 다리 굽히는 게 더 에너지 소모가 많이 드는 번거로운 일이니까, 희생정신 강한 허리가 먼저 굽힌다. 아이고, 허리는 체력이 약하다. 희생정신만 강하면 뭐해, 체력이 좋아야지.

에구구구, 짧게 신음을 내며 허리를 편다. 땅만 보던 내 시야도 넓게 트인다.


어?

날 바라보는 고양이

고양이

가까이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스핑크스와 같은 위엄을 지니고 근엄한 눈빛을 내게 보낸다. 고양이다.


예전에 닭머르에서 산책할 때 고양이 4~5마리가 있던 게 기억났다. 그 고양이인 게 틀림없다. 치즈냥이가 먼저 보인다. 이윽고 어디선가 고양이가 더 나타났다. 각자 나와 거리를 두고 식빵을 굽고 있다.

고양이 한두 마리는 점점 내게 가까이 온다. 나는 쓰레기를 다 줍고, 옆 구역으로 이동하면 고양이가 살짝 떨어졌다가 다시 내 옆에 온다. 나는 몇십 분 동안 쓰레기만 주웠기에, 고양이들도 내가 자신들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나 보다. 적당히 거리만 유지한 채 나를 지켜본다.


가장 용기 있는 고양이는, 가장 미묘였다. 길고양이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털이 깨끗했다. 눈이 참 예뻤다. 쓰레기를 줍다가 카메라를 들이밀 수밖에 없던 고양이. 카메라를 보더니 날 보던 시선을 멀리 떨어뜨린다. 이 고양이, 사진 좀 찍을 줄 아나?


와... 너무 귀엽고 예쁘다...


고양이 영상


닭머르에서 봉그깅하는 이유

한 주 내내 닭머르에서 봉그깅을 했다. 쓰레기가 많아서, 주워도 주워도 줄어들지 않았던 것도 물론 있다.

... 고양이가 보고 싶다.


혼자 쓰레기를 줍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사실 재미 없다. 그냥 운동하는 느낌이다. 쓰레기를 줍는 것에 엄청난 동기나 열정이 있지는 않다. 내가 봉그깅하기로 계획했다는 사실에 줍는 것뿐이다. 그랬는데, 이 열심히 주우러 올 이유가 생겼다.


고양이는 비슷한 시각에 닭머르에 모이는 것 같다. 5시 정도에 4마리 정도는 항상 모이는 것 같다. 치즈냥이, 미묘, 고등어냥이, 삼색냥이, 반치즈냥이. 나와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대화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고양이들과 얘기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


와, 이거 쓰레기 너무 많다. 그렇지, 고양아?
아니 도대체 이건 누가 버린 거야?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니, 고양아?


가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야옹이 말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야옹~'

하지만 내가 야옹언어를 서툴게 해서 발음이 좋지 않은가보다. 고양이가 대꾸 없이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 뻘쭘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열심히 회화 연습해서 나중에 유창하게 대화할 거니까.


나중에 알게 됐다. 고양이가 이렇게 가까이 오는 이유.

어둑어둑해지는 5시 반이 되면, 한 낚시꾼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가신다. 가시는 길에 작은 물고기 하나를 고양이한테 던져주고 가시더라.

그때 모든 게 이해됐다. 잠깐 핸드폰을 바닥에 두니 금새 다가와서 핸드폰 냄새를 맡던 장면, 5시가 넘으면 고양이들이 하나둘 모이는 장면...

나랑 친해져서 나에게 다가온 게 아니었구나.


살짝 실망했다.




PS. 그러고는 집에 가서 츄르가 얼마 정도 하는지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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