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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Dec 09. 2021

함께해야 아름다울 제주 바다

감사해요, 함께해주셔서

흠흠...  안녕하세요? 봉그깅 하시나 봐요?


오늘도 어김없이 닭머르로 퇴근했다.

여느 때처럼 마대를 집어 들고 해안으로 걸어가는데, 앞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나와 같은 가방을 메고 있다. 봉그깅대회 전에 디프다제주(주최 측)에서 나눠준 그 가방이다.


동질감, 고마움, 반가움이 뒤섞인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마스크에 가려져 나만 몰래 느끼는 흐뭇함이다. 초면이지만 왠지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오늘 봉그깅은 재밌겠구만!


디프다제주가 나눠 준 가방. 이니스프리에서 후원을 해줬다.


저 멀리 신제주에서 왔다고 한다. 신제주에서 버스를 타면 여기까지 1시간 반이 좀 넘을 거다. 지금은 퇴근 시간이 아니지만, 돌아갈 땐 퇴근 시간에 걸려서 2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이렇게 멀리까지 오다니! 신촌과 닭머르가 내 껀 아니지만, 동네 주민으로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마터면 고맙다고 할 뻔했다.


누군가 닭머르에 쓰레기가 많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한다. 누굴까, 그렇게 말한 사람? 고맙다.


마대에 비해 쓰레기가 많아서, 금방 끝났다. 1시간도 안 돼서 더 채울 마대가 없었다.

이거 하자고 왕복 3시간 거리를 오면 가성비가 좋지 않다. 처음으로 닭머르까지 왔다고 해서, 닭머르의 노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오지랖을 조금 발휘해서 사진이 잘 나오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인생샷을 건져주고 싶어서 역동적이게 자세를 취한다. 비율이 좋게 나오도록 땅에 바싹 붙기도, 닭머르의 정자가 멋진 배경으로 나오도록 한껏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마지막 쓰레기 마대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 사람은 갑자기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찾는다. 빼빼로, 나한테 먹으라고 줬다. 마침 빼빼로데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감동...

나도 받기만 할 수 없어 무엇인가를 건네고 싶었지만, 줄 게 없었다. 안타까움에 "다음에 꼭 여기 다시 오세요!"하고 미래를 기약했다. 다시 만날 땐 뭐라도 주고 싶었다. 안 되면 밥이라도 사주리라!




동료가 생겼던 다음 날, 조금은 기대하고 닭머르에 갔다. 누군가 쌓아놓은 새로운 마대가 보였다. 내가 어제 쌓았을 때보다 몇 개가 늘었다. 누구였을지 상상해 보려고 했는데, 주변에 가족 하나가 있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분 손에 마대가 들려있고, 디프다제주 가방이 있는 걸 보니 이분도 봉그깅대회 참가자이시다. 이제 막 봉그깅이 끝났는지, 아버지와 아이는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증샷을 남기려는 듯, 자갈밭에 핸드폰을 두고 가족이 모두 나오게 사진을 찍으려 하신다. 내가 다가가 한 마디 붙인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이 가족은 여기서 가까운 동네에서 오셨다. 여기에 자주 오셨었는지, 닭머르가 더러운 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셨다. 쓰레기가 많은 또 다른 해변도 알려주셨다. 가족이 모두 오셔서 함께 봉그깅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주울 땐 이미 자리를 뜨셨었다. 고양이를 기다리며 쓰레기를 줍는데, 어머니가 홀로 오셔서 내게 과자 하나를 주고 간다. "먹을 사람이 없어서"라고 하신다.

아이가 먹을 사람 같은데요, 어머니... 


과자를 주시고 서둘러 떠나셨다. 뒷모습에서 후광이 나는 것 같다.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가, 나는 뭐 드릴 게 없나, 생각하다가 적절히 감사 인사를 못 드렸다.

"어... 어...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이미 등을 돌린 채 멀어져가고 계셨다.


왜 봉그깅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착한 걸까? 나도?




주말에 '다함께 봉그깅'이 열렸다. 김녕항 인근에서 10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 테트라포드에 쌓인 쓰레기를 치운다.

테트라포드, 정말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가까이 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었다.

스티로폼이 잘게 부서져, 눈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푹신푹신하고 안전할 정도로.


눈처럼 쌓인 스티로폼


딱 한 시간 주웠는데 10명이 80L짜리 마대를 58개 채웠다. 쓰레기가 너무너무 많아서, 닭머르처럼 쓰레기를 찾아 나설 필요 없이 한 자리에서 퍼담기만 하면 됐다. 팔은 고생이었지만 다리는 편안했다. 아니, 다리만 괜찮았고, 다른 몸 전체는 땀이 뻘뻘 났다. 지금이 겨울이 맞나 싶었다!


봉그깅이 끝나고 참가자 몇몇 분이랑 인근 카페에 가서 휴식 겸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함께 봉그깅한 사람과 뒤풀이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사실 그동안 뒤풀이를 너무 하고 싶었다. 혼자 참여해서, 혼자 쓰레기 줍고, 혼자 떠나면, 재미가 없다. 함께 참여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어떤 사연으로 여기에 오게 됐을지, 오늘은 어땠는지, 어떤 생각으로 쓰레기를 줍는지.

이주민, 도민, 반년 살기, 다양한 사람이 모였었다. 또 만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 얘기만 했는데도 에너지를 얻은 듯 재밌었다.


자, 이제 내가 베풀 차례인가?

지난 2번의 선물로, 마음이 너무 따뜻했었다. 이 따뜻함을 나 혼자 머금는다면 뜨거워 녹아 버릴지도 모른다. 이 온기를 나눌 방법을 고민하다, 딱 좋은 물건이 떠올랐다. 바로 엽서.

내가 직접 만든 엽서가 있다. 나름 괜찮게 만들었다 자부해서 나눠주기에도 부끄럼이 없었다. 혹시나 선물이 필요한 때가 생긴다면 바로 줄 수 있게 차 안에 배치해놨다. 오늘 그 준비성이 빛을 발할 시간!


내가 만든 엽서


다들 기분 좋게 받아주셔서 고마웠다.




함께 하는 것.

그 맛에 봉그깅을 하는 것 같다.


봉그깅은 필연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주워도 제주 바다, 온 세계 바다를 깨끗이 만들기 힘들다.

우리 함께, 서로서로 좋은 영향을 끼쳐야 조금씩 아름다운 바다를 만들 수 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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