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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Mar 26. 2022

먹지 못한 사과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할머니, 죄송해요.
다음에 할머니 댁에서 밥 먹고 가겠다는 약속, 못 지킬 것 같아요.




한 3~4일은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캐리어에 옷을 이것저것 넣는다. 무슨 옷을 입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추우니까 두꺼운 옷을 욱여넣는다.

음, 채도 없는 옷이 좋을 것 같아.

밀린 설거지를 하며 냄새가 나지 않게 배수구의 음식물 쓰레기를 치운다. 멀티탭을 뽑고 집을 비울 준비를 한다. 씻고 짐을 챙겨 나가니 한 시간이나 걸렸다.


"가장 빠른 비행기로 주세요."

매일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구매했기에, 공항에서 표를 사면 수수료가 붙는 걸 처음 알았다.

평일이라도 비행기 삯이 꽤 비쌌다. 8만 원이라니... 공휴일 다음날이라서 그런 걸까? 비싸게 산 만큼, 비상구 자리로 배정해주셨다. 무덤덤하게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발걸음을 끌었다.


"잠시만요, 짐이 많으셔서 짐 하나는 위탁 수화물로 부쳐주세요."

짐이 많다고 지적받은 건 처음이다. 아무래도 정장이 캐리어에 들어가지 않아서 손에 들었던 게 문제다. 가방과 캐리어, 그리고 정장까지 있으니 그럴만하다. 게다가 나는 비상구 좌석이라 더욱더 까다롭게 보시는 것 같다.

탑승구에서도 위탁 수화물로 짐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표정으로 짐을 맡겼다. 평소 같으면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할 텐데, 담이 결려 뻣뻣한 몸처럼 세상을 딱딱하게 대했다.


다리를 쭉 펴도 걸리적거릴 게 없는 편한 비상구 좌석이다. 여기 앉으면 누구나 극한 상황을 상상해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테지?)

아수라장이 된 비행기에서 길을 터주고 승객을 질서 있게 탈출시켜야 한다. 나는 마지막까지 승무원분들과 함께 비행기를 지켜야 한다. 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설마, 하필 오늘 사고가 날까?


항공기에서 바라본 서쪽 노을. 아름다웠다.


오늘 유난히 날씨가 맑았다. 한라산이 또렷하게 보이는 걸 보니, 미세먼지가 거의 없나 보다. 아직 백록담은 희었고, 밝은 햇빛을 오롯이 받아 제주 전역으로 드넓게 반사해주는 것 같았다.

착륙을 앞두고 구름 한 점 없는 땅이 드넓게 펼쳐졌다. 왼쪽으로는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붉어진 해가 마지막 빛을 넘기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이미 해를 보지 못하는 땅 사람들이, 밤처럼 가로등과 자동차 라이트를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세상은 낮, 누군가의 세상은 밤이었고, 나는 그 경계를 줄 타고 있었다. 유난히 예쁜 일몰과 야경이었다.


할머니는 오늘 밤을 보지 못하셨을 것이다.


밤보다 어두운 순간.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착륙이 두려워졌다.

유난히 비행기가 사납게 착륙했고, 비행기에 탄 아가 셋은 앙상블로 애끓게 울었다.

비행기가 초상집이다.




니가 이렇게 컸는데 나가 안 늙을 수가 있나


내가 이렇게 크지 않았으면 할머니는 젊으셨을까.


할머니한테 내 나이를 말씀드리면, 할머니는 놀라셔서 "니가?" 하신다.

어느덧 환갑이신 아버지 나이를 말씀드리면 손사래 치며 "아니라이~" 하신다.


할머니께 나는 아직도 학생이다.

할머니를 뵈러 올 때마다 어엿하게 콤퓨타 회사에 다니고, 제주도에 산다고 말씀드려도, 늘 새로이 들으셨다. 집은 어디서 사냐고, 밥은 누가 해주느냐고, 색싯감은 있냐고 묻는 패턴은 이제 다 외웠다.


할머니는 선물을 좋아하시지 않으셨다. 한 손주가 선물한 인형을 무섭다고 내팽개치실 정도다.

하지만 유독 좋아하셨던 선물 하나. 바로 빨간 내복이다.

내가 첫 월급을 받고 집 앞 BYC에서 빨간 내복을 한 벌 샀다. 빨갛다기보단 분홍색에 가까웠다. 내복이 그렇게 종류가 다양하고 비싼지도 몰랐다. 그해 추석에 할머니를 드리니, 당시 무릎 수술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셨던 할머니가 우시면서 좋아하셨다. 음... 우셨는데 좋아하셨던 게 맞겠지?


더 놀라웠던 건 어제 일도, 아니 몇 십 분 전 일도 기억 못 하시는 할머니께서 다음 설이 훌쩍 지나서도 빨간 내복의 출처를 기억하고 계셨다. 치매 때문에 단기기억이 많이 약해지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할머니, 이 내복 어디서 나셨어요?"

"니가 안 줬나!"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빨간 내복 선물. 편지도 함께 드렸다. 할머니는 글자를 읽지 못하셔서 다른 분이 읽어드렸다.


할머니 댁에 오면, 할머니는 당신 드시려 꺼내 놓은 사과를 먹으라고 주신다.

냉장고에서 언제 꺼냈는지, 시원한 기운은 이미 없지만, 표면은 항상 뽀얬다.

"사과 먹어, 사과!" 특유의 날카로운 말투로 사랑을 표현하신다. 할머니, 그 말씀하신 지 3분도 안 지났어요.


마지막 뵌 날, 할머니는 유독 사과를 먹으라고 보채셨다. 평소 같으면 계속 미루며 먹지 않았겠지만, 그날은 어쩔 수 없이 사과를 손에 들고 할머니 댁을 떠나왔다.

그러고 보니, 결국 그 사과는 내가 먹지 못했다. 친구 집에 놔두고 와서, 친구가 대신 먹어줬다. 친구가 맛있었다고 했다.

그 사과, 내가 먹었어야 했네.




장례식의 의미

장례식장엔 나보다 우리 회사에서 보낸 화환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그 옆으로 손가락만으로는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화환이 모여들어 복도를 에워쌌다. 가끔 뉴스에서 봤던 이름이 적힌 화환과 깃발이 보인다.

식당엔 미리 배치돼 있던 상조회사 조의 물품을 밀어내고, 대기업 이름이 적힌 수저와 종이컵이 장례식장에 깔렸다.

할머니는 (내가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었던) 우리 회사 이름을 미처 기억하지 못하셨었는데.


장례식장엔 아버지의 친구분들, 삼촌과 큰아버지의 친구분들이 계속 방문해주셨다.

할머니와 가장 친하셨던 할머니의 동생, 이모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정정하셨을 때 가끔 가셨던 노인정 친구분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지 못한 걸까?

할머니를 기억하시는 사람은 장례식장에 그리 많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런 장례식장을 상상해보셨을까? 영정 사진처럼, 우릴 보고 계신다면 뭐라고 생각하실까?


장례식장은 누구를 위한 장소일까?

내가 내린 하나의 결론은, 장례식장은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위한 곳이라는 것이다.

산 사람의 인맥이 부조함과 방명록을 채우고, 산 사람을 위로하는 말이 오간다. 산 사람이 얼마나 내세울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다양한 곳에 몸담았는지, 얼마나 금전적으로 여유로운지 드러난다.


장례식장의 밥. 매일 먹으니 질렸다. 모든 식기가 일회용품으로 도배됐다.


바로 옆 호실은 젊은 분이 돌아가셨는지, 어린 상주가 교복 입은 조문객을 대하고 있었다.

그저 느낌일까,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장례식장에 있으면서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 나진 않았다.


우리 가족(친척)은 마냥 슬퍼하진 않았다. 흥이 많은 가족이라 웃음소리도 꽤 많이 들렸다.

웃다가 문득 "할머니 돌아가셨는데 웃어도 되나"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할머니도 우리가 계속 우는 것보다 웃으시는 걸 좋아하실 거다."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입관하시는 순간만은 그렇지 않았다.


장의사는 장손인 내 위치를 계속 조정해줬다.

할머님 머리 쪽으로 가까이 오세요, 이 줄을 잡고 계세요, 나머지 손주분들은 장손 뒤에 따라 서세요.

그놈의 '장손'이 뭐라고...

덕분에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생전엔 전혀 하지 않으셨던 화장을 하셨다. 할머니가 이렇게 눈을 감고 조용히 계셨던 적은, 기억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찾을 수 없었다.

낯설었다. 할머니는 맞는데, 할머니가 아니다.


"할머니의 존재는 어디 있을까?"

나는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이 모두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니까, 인식하는 주체인 내가 사라지면 세상은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남은 사람이 이토록 슬퍼하는데 없어지는 게 과연 맞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남은 사람의 슬픔이 이렇게 무거운데, 사후세계는 없다고 하기엔 조금 억울하다.


어둡고 서늘한 영안실에서 존재론적인 질문에 빠져 허우적댈 때,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됐다.

할머니 얼굴을 뵈며 건네드리는 마지막 대화.


어떤 말로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할까?

죄송해요, 감사해요, 편히 쉬세요, 하늘에서 봬요, 여러 말이 흩날리듯 맴돌았다. 하지만 그중 어떠한 말도 목소리를 떨지 않고 온전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


... 쉬세요.


부디 하늘에서는 무릎도 안 아프시고, 화낼 일도 없으시고, 편히 쉬세요.


그게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추운 영안실에 잠시 계시게 됐다.

'90세' 나이가 적힌 팻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할머니 자리 옆에 '무연고 46세'라 적힌 팻말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인 날 새벽, 할머니께 드리는 제사에서,

나는 또다시 사과 위에 아슬아슬 젓가락을 올렸다.


화장장이 없어 새벽에 강릉까지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마침 수도권엔 비가 내렸지만, 강릉엔 내리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무릎이 튼튼하시길 바라요.


화장이 끝나고, 할머니는 무릎에 박혀있던 손바닥만 한 쇳덩이를 남기셨다.

큰아버지는 그 쇳덩이를 원흉으로 지목했다. 쇳덩이가 더욱 괴이해 보였다.


장례식장을 벗어나, 그날 밤은 홀로 보냈다.

3일의 장례를 돌이켜본다. 한 달 전, 할머니를 뵀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한다. 더욱 시간을 돌려 '할머니'라고 적힌 기억 비디오를 몇 개 꺼내 본다.


다시, 먹지 못한 사과가 떠오른다.


할머니가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을 때마다,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 먼저 나오며 "다음에 오면 밥 먹고 갈게요!" 하던 핑계가 떠오른다. 간만에 서울에 갈 때마다 만날 친구들이 많았을뿐더러, 할머니 댁엔 먹을 밥도 많지 않았다. 다음에 먹으면 되지, 할머니와의 약속이었고, 또한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이제는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됐다.


사실 일주일 뒤에 서울에 올라올 예정이었다. 이번에 올라오면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와 영상 하나를 찍으려고 했다.

"할머니, 자식들 어렸을 때 어땠어요? 저는 어땠어요?"

"할머니, 지금껏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뭐예요?"

"빨간 내복 어디서 나셨어요?"

콤퓨터 회사에 취직했고 제주도에 있다고 말씀드렸을 때 매일 똑같은 반응도 같이 녹화하려고 했다.

병원에 계셨어서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었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러 베개에 닿았다.


그제야 할머니를 제대로 보내드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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