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과 현실 그리고 도피
[적성과 도피]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할 게 없어서 하는 일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좋아서 하는 일과 도피를 위해서 선택하는 일이 있다. 전자를 적성과 재능이라고 말하고 후자의 경우는 사람들의 입에서 굳이 언급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다. 예전의 내게는 그림이라는 게 그런 의미가 있었다. 내가 잘하지는 못할지언정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인 줄 알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주체 못 할 시간과 현실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그저 그리는 일에만 몰두했을 뿐이었고 거기서는 효휼 나쁜 노력의 결실과 없는 재능으로 억지로 짜낸 결과물들만이 존재했다.
지금 와서 내가 다시 그리기 위해 펜을 잡지 않는 이유도 그렇다. 더 이상 내게 어떤 도움이 되지 않았고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나는 내 지신의 한계와 분명히 마주했고 현실과 재능의 벽을 느꼈다. 더러는 내가 도망쳤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림으로 도망쳤지 그림으로부터 도망치진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고 어느새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내게 있어 그림은 더 이상 어떠한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기회]
비바람이 선선했던 어느 저녁날 나는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었다. 동생의 진로와 흥미에 대한 주제가 나왔을 때 동생 나의 공통점인 미술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나는 솔직하게 내가 포기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내게 동생이 미술을 진정으로 하고 싶어 했는지 물으셨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분명한 건 동생은 나보다 재능이 있었고 실력적인 면에서 나는 그것만을 말씀드릴 수 있다 했다. 그러나 동생이 진정으로 그림을 좋아했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동생에게 그 외의 것 혹은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찾을 롤모델이 가 기회가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나의 동생에겐 그런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에겐 이러한 기회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군지를 충분히 알아가고 묵상할 시간이 없으니 대개 대학에 가서야 방황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듯 늦바람이 났다는 말이 이런 곳에도 해당이 되곤 한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데 이것이 진로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는 소수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자신의 성장 배경에서 이미 진로가 한정되어버린 경우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나는 행운아에 속했다. 수능 원서를 내기 직전 나의 소명직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후회로 남는 일]
그날 아버지는 이전에 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제가 죽기 직전 저는 먹지 못한 밥 한 그릇보다 이루지 못한 꿈이 더 후회될 것 같습니다.”
주호민 작가의 무한동력이라는 만화에서 봤던 대사였다. 나는 이 문장을 접한 이후로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이정표로 삼기로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그제야 굶어 죽어도 상관없는 일을 한 가지 찾았고 이후 몇 년간 그 공부와 일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영혼의 갈증을 완전히 채워준 것은 아니었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계획하고 시도하기를 몇 번, 나는 필사적으로 내일 아침에도 내가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까닭을 소거하고서 내게 남은 것은 하나였다. ‘음악을 해보는 것’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내게 후회가 되었던 것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잘한 일이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겐 부끄러운 일이며, 사역자로서 옳은 방향의 생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설움으로 남고 후회로 남는 일은 이것이었기에 나는 냉큼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차피 금전적인 문제는 사역을 시작하며 포기하는데 익숙해졌고 내겐 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일이 필요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죽지 않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끝까지 가서야 남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꼭 과거에 갈망했던 일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며, 지금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정말 간절한 일인가 생각하는 일은 별개로 봐야 한다.
[도피와 도전]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음악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내일을 계획하며 오늘 주어진 지금 당장이란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껴서 써야 했고 어떻게 지속하며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장기적인 목표에 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그림을 그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의 차이는 확연하다. 적은 노력으로 인정을 받을 만큼 결실을 내기란 재능의 영역이며, 어떤 일을 끈덕지게 끝까지 노력할 수 있는 일도 그 분야에 대한 재능의 영역이다.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은 삶의 축복이며 크나큰 행운이다. 하지만 현실을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 곧 자아실현에 앞선 생계와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한 일을 해야 하며 그 일들이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좋아하는 일 혹은 하고 있는 일이 자기 마음속 가장 간절한 목소리와 현실의 부름을 피하기 위해 그저 시간 죽이기와 보여주기 위한 구실로 하고 있는 일이라면 내가 분명히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게 도움이 되었던 통찰과 문장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울림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남기는 글이다. 솔직하고 충실하며 담대하지 못하면 인생의 책임을 받아들이기에 참 억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책임질 수 있는 불행 그리고 행복]
또한 도피를 위해서 선택한 일이 당신의 인생에게 족쇄가 되며 어느 순간 변명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자신을 마주할때 밀려오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다는 것이다.
어차피 본인의 삶은 본인의 책임이기에 그 책임지는 일이 행복할 만큼 적성과 재능에 맞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만큼 삶이란 무조건 남 탓을 할 수만도 없는 영역이다.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원대한 꿈과 비좁은 현실의 차이가 너무나 클지라도 언제나 위대한 일은 처음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미우라 켄타로 작가의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결국 어디에 있던지 다가올 시련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암시하는 이 말은 정해진 운명론을 부정하며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 중 나온 대사로서 이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