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찾아왔다

by 광규

나그네가 찾아왔다. 아무런 기별 없이. 거추장스러울 것 하나 없은 단촐한 행장으로 나그네가 찾아왔다. 나는 젊어서 자아를 찾아 떠난 은자의 길을 따르고 싶었다. 거류하기 위해서 지키고 갖춰야할 짐들을 포기하고서 나는 홀연히 사라져 객사할지라도 차가운 몸뚱이로 바람과 비를 맞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을 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가치관에 들어맞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결국 차오르는 육신의 갈망을 이겨내지 못하며, 내려놓는 삶이란 외롭고 대책 없는 것이라며, 가슴 한켠 가장 작은 공간에 수납해버렸다.


우리가 다시 만난 장소는 밤 10시가 지날 무렵 한 봉사단체에서였다. 거리의 천사들. 우리를 부르는 말이었다. 나는 매주 화요일이면 이곳에 들러 새벽 1시까지 봉사활동을 했다. 교회의 후원을 받고 한 목회자 가정이 운영하는 단체인 이곳은 지하철 노숙인들을 찾아가 음식을 나눠주고 기도를 했다.


그러나 기도만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알았는지 그들은 노숙인들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생각해냈다. 각종 복지단체와 연대하여 그들의 자생을 돕는 일이었다. 음식과 함께 봉사자의 수필 편지와 명함을 남겨두고 왔는데 그곳으로 어떻게든 연락을 하거나 찾아오면 도와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숙자에게 통화가 되는 전화가 있을리도 없고, 하루 술값을 벌기에 급급해보이던 그들이 과연 찾아올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나는 교만했다.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착각 그리고 내가 저들보다 낫다는 생각 속에 갈피 잃은 동정심을 쏟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생각은 낙은해를 보고서 바뀌기 시작했다.


두번째 만남에서 그는 자신을 “나그네”라고 불러달라고했다. 우린 노마드다. 노마드는 히브리어로 유목민을 의미한다. 종교인인 나는 존재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본질을 두고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나의 본향이 아니며 언젠가 내가 가야할 나라가 나의 본래 있을 곳이란 생각에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을 선뜻 내어주며 나눌 수 있었고 나의 것으로 누군가를 돕고 살릴 수 있었다. 본디 나의 것이 아니고 내게 스쳐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형 이상학적 세계에 산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


낙은해는 자신을 나그네라고 했다. 자신도 본디 이곳에 스쳐 지나가는 존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믿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현재를 살았고 현재는 자신의 물욕으로 잡아둘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흘려보내야할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는 나의 믿음의 조상의 말과도 너무나 잘 맞는 생각이었다.


나그네에게 세상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곳을 스치는 인연이었고 그것이 참 소중하다 말했다. 영원을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순간에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33년을 살다간 성자도 세상을 사랑했다. 세상을 몹시 사랑했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 죽었고 그의 공생애 3년의 시간을 바쳐 이름도 빛도 없는 이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죽임을 당한다.


그의 가르침과 나그네의 통찰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성자를 믿으며 영원한 세계를 꿈꿨고, 모두가 영원한 그곳에서 지낼 것이란 묵시적 소망과 희망에 살았다. 그것을 위해 헌신했고 그것이 있기에 괜찮다 생각하며 봉사했다.


그러나 나그네는 달랐다. 그에게 영원은 없었다. 그는 죽으면 진정 모든 것이 끝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지금을 위해 헌신했고 사랑했다. 누구의 가르침이 옳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상하게도 그의 생각이 성자와 더욱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 나쁜 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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