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겨울이었다. 블레싱을 준비하며 선교 단체와 협력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나눠주던 날이었다. 나는 낙은해에게 전화했다. 오시지 않겠냐고.
“그렇다면 제가 가야지요.”
일정만 알려주면 그는 달려온다 했었다. 그도 종교인이고 자신의 절을 맡아야하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흔쾌히 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성탄절이기 때문에 그 시간은 온전히 성자를 위한 시간으로 비워둔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고민하던 내게 그는 얼마뒤 카페에서 만나 이어서 설명을 해줬다. 내가 성자에게 대해 배우게 될 날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찾아올지 모르고 있었다.
성자는 세상에 올때 그의 일정을 한 사람의 평생 만큼 비워두고 왔다고 했다. 그의 인생은 주기 위한 삶이었다. 그는 어느순간 가정을 등졌고 사랑을 위해서 평생을 살다 죽었다. 그의 삶을 참으로 주는 것이었다. 그런 성자를 기리는 날을 온전히 내어주는 날이어야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성자를 위한 시간이라 말하며 그는 시주를 모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고 말했다. 십일조를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던 나와 맥락이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그 달에 걷힌 모든 금액을 기부했고 나는 일부는 사례비로 받고 남은 돈은 전부 기부했다는 것이었다. 내겐 가정이 있었고 그는 가정을 등지고 남에게 내어주기 위한 삶을 택했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자가 이곳에 온 이유는 세상이 그만큼 아파서라고 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질 수 없을새라 그를 가르치려 했다. 그는 내게 가르침을 주려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나누려했을 뿐이었지만 나는 무언가 정보를 전달하며 나의 전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썼다. 성자는 나의 신이었다. 적어도 그는 성자에게 기도한적이 없고 그를 위해 찬양 한가사 불러본적도 없을 것이었다.
세상을 사랑해서 이땅에 왔다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태초에 있던 그 성자가 그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할 때 매우 보기 좋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보기 좋았더라면 그가 과연 이땅에 왔을까요?”
머리를 한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성자는 세상을 사랑했다. 그리고 세상은 성자가 사랑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세상은 성자가 와야했을 만큼 아름답지 못했다. 세상은 성자가 죽어야할 만큼 아픈곳이었다. 병에 들어있었다. 온갖 나그네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