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 이날 들은 엄청난 칭찬이었다. 예수쟁이가 좋은 일하고 간다는 쪽방촌 아저씨의 말이 기분이 좋았다. 원래 크리스천은 예수쟁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향한 멸칭이었다.
그러나 그 단어는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너무나 좋은 단어였다. "예수뿐인 사람", "예수에 미친사람", "예수를 따르는 사람". 쪽방촌 사역을 다녀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드리고 왔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와 다를바 없는 존귀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고층 빌딩과 서울 도시한복판의 풍경이 있지만 그 바로 옆, 바로 아래에는 이렇게 하루 하루의 생계가 힘들고 제대로된 곳에서 편히 누워있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이들을 거들떠보려하지 않고 이곳을 피해갔다. "나는 예수쟁이니까 이들을 찾아가야한다." 사역을 마치고 내 마음을 때린 생각이었다. 예수쟁이니까 그들을 찾아가고 예수쟁이니까 그 이름에 맞는 사랑을 해야한다. 나는 진정한 예수쟁이가 되기 위해 멈출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는 예수쟁이다. 약 2000년전 베들레헴 민가의 1층의 가축이 살던 곳. 사람들은 2층에서 재웠으나 자리가 없어 짐승들의 돌 구유위에 누우셨던 그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쟁이다.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고, 병든자와 가난한자들은 직접 찾아가신 그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쟁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그네에 대한 압제를 금지하시고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학대를 금하셨고, 이들과 함께 기뻐하라하셨고, 무고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고, 노예된 자를 사용하시고 그들을 해방시키신 지극히 낮은 자들의 보호자와 친구가 되신 그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신앙의 고백은 곧 이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말과 같다. 사랑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더이상 크리스천이 아니다. 나는 사랑을 했을까? 그런데 나는 진정 사랑을 했을까?
추운 날이어서 그랬을 까. 손이 몹시 떨렸다. 나그네는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의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장갑을 쪽방촌의 한 주민에게 나눠주고 온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겉옷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성자는 자신의 제자들을 부를 때 두벌 옷과 지팡이와 배낭조차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오히려 그것은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줄수록 아름답게 쓰여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쟁이였다. 하지만 성자를 닮진 못했다. 그날 낙은해는 성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