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은해와 함께 쪽방촌 봉사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용산의 빌딩의 그들에 가리워진 냄새나고 더러운 동네가 있었다. 사람 한명 간신이 몸을 가누기도 힘든 곳에 등창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이 누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막노동을 할 수 없다면 구걸을 하며 살았다. 그들이 사는 동네엔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들의 집은 혐오시설이었다.
그들이 살던 동네의 공원은 술명이 굴러다니고 사람이 누워 자고 있었다. 욕설이 난무했고 곳곳에 배설물의 냄새가 진동하며 코를 찔렀다. 나는 찡그리고 싶은 얼굴을 애써 숨기며 그들에게 음식과 양말을 나눠줬다. 겨울엔 발이 춥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나그네는 빙긋 웃으며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겁니다.”
자신의 신이 아닌데도 그는 그리 말했다. 석가탄신일엔 다르게 말했겠지. 나는 차마 그곳에서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들 앞에서 나는 그 아름답고 휘황 찬란한 나라의 실재를 증거할 수 없었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누릴거 다 누리고 남는 것으로 돕는 주제에 감히 그런 나라가 있으니 믿고 선행을 베풀라고 증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창문에서 소리를 쳤다.
“예수쟁이 놈이 좋은 일 하고 가네!”
나는 큰소리에 놀라 위를 쳐다봤다. 나그네 앞에서 뿌듯함을 느낀 감정도 없잖아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부쳐쟁이 공자쟁이 알라쟁이들이 다녀갔는데 예수쟁이들이 제일 좋은 일 하고 간다!”
술에 취한 아저씨의 칭찬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그네는 말했다.
“예. 그렇지요.”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기분을 상해하지도 않았다. 성자가 사랑하라 했을 때 그의 사도는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나는 무엇을 구했던가. 나의 영달은 아닐테고 나의 내세를 구했던가? 그랬다면 내가 한 것은 진정 사랑이 맞았을까?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 모든 영광이 돌아가더라도 나는 그렇게 기뻐하며 일할 수 있었던가?
성자는 평생을 아버지께 바친 삶을 살았다. 그는 모든 삶을 이웃을 위해 드렸다. 지극히 작은자 사이에 아버지가 있었고, 모든 일을 주께하라 하듯 가르쳤듯 모두에게 아버지께 하듯 섬겼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께 삶을 바친 것은 이웃에게 삶을 내어주는 것과 다를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