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아들이란]
자녀는 부모의 자랑이자 사랑이다. 부모님이 우리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신 젊음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란 무엇이었을까.
병을 앓고난 이후엔 아버지에겐 마음은 단단히 먹으란 말을 들었다. 나를 전해 이해해주지도 공감해주지 못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마음을 단단히 먹는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게 우울증을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저 흘려보낼 폭류와 같았다. 그것에 거스를스록 나는 다쳤고 그 기간이 마침내 10년을 넘어갔을 때 내 마음은 완전히 망가저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버렸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허탈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키워온 아들이 겨우 이런 사람이었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내 스스로에 대해 보호하는 법이 망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이렇듯 오해를 낳고 또다시 누군가를 상처입힐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죄송한 것은 나는 그때도 지금도 아버지의 좋은 말씀에 좋게 대답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우울증 걸린 아들이란]
아버지에게 우울증 걸린 아들이란 적어도 어딜가서 자아할 수 있는 아들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나의 자조였고 착각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며, 부모님이 내게 주셨던 사랑은 어느때도 바뀐적은 없었다. 내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우울증이 걸린 나에겐 그런 기준이 필요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판단에 빠져들지 않도록 내 스스로 깨달아 나를 붙잡을 수 있는 그런 생각이 필요했다. 지금 어딘가에도 가족이나 자신이 아픈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을 상처 입힐 권리는 당신 스스로에게도 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좋은 말을 해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삶이다. 나도 잘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의 아픔이 공감 받고 이해 받으며 떳떳해지길 나 역시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