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걸린 아들의 이야기
"엄마가 널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날아온 비수 같은 말이었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기로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부모님께 우울증 및 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지금처럼 계속 눈치만 볼까?
이 한마디로 내가 그분들께 어떤 존재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 내 아픔은 눈치 보이는 존재였다. 이 병을 밝힐 때 나는 단 한 번도 그분들이 나로 인해 죄책감을 갖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의 상태를 알리고 내가 병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내가 나를 인질로 나의 아픔을 휘둘러 무기로 삼을 수 있었음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누군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부모님의 말이 아픔이 되고 또다시 상처가 되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가족들 앞에서는 아픈 티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만 할 뿐이었다. 내 눈치를 보면 안 되니까.
어찌 보면 또다시 마음의 문을 닫은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글을 썼고 상담을 받으며 최대한 아픔으로부터 나를 객관화해서 스스로 나를 알고 내 슬픔의 기원과 근원을 찾아 병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증상에 비하면 나는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었고, 의사 선생님도 상담사 선생님도 나의 치료에 대한 강한 의지와 정신력에 놀라시곤 했다. 비슷한 상태라면 이미 병원에서 통제를 받으며 치료에만 집중을 해야 할 상태가 내 상탱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심히 글을 쓰고 올리던 어느 날. 내용은 그것과 완전히 달랐지만 어머니께서는 다시 내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사랑해도 아플 수 있잖아요.라는 글을 썼더라. 그래서 그만 미안해하기로 했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족으로서 건강함이 회복되면 나의 문제는 나와 의사선생님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에 혹시나 가족 중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몇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1. 앞에서 병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 것.
2. 상태에 대해 자신이 판단하지 말 것.
3.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눈치 주지 말 것.
4. 같은 이유로 눈치 보지도 말 것.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제일 잘 알고, 상담사 선생님이 제일 잘 얘기해주신다. 전문가의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여러분에겐 이웃과 가족과 친구의 역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혹은 배려받아야 한다는 마음에 제약을 걸려고 하지 말라. 감정에 솔직해질 기회가 필요하고 반드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 그 사람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쉽게 판단해선 안된다. 상담사님도 그걸 도움을 줄 뿐이지 결국 자신을 알아가야 하는 건 스스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어느 병이나 그렇듯 우울증 역시 상당히 외로운 병이다. 눈에 보이는 아픔도 아니고 아직까지 그 인식이 자유로운 아픔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을 하면서 나는 내 아픔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어딘가에 숨어 홀로 아파하고 있을 이들에게 공감이 필요하고 쏟아내는 마음의 말들을 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면 내가 이곳에 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