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고요에 완치인 줄오해하다

나의 우울증 이야기

by 광규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하더라도 1년 중 365일 남짓한 모든 시간을 전부 우울하게 사는 건 아니다. 심지어 나의 병은 조울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한참 기운이 돌아서 이것저것 판을 벌리고 시도를 해보는 시간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 일주일을 내리 업되어 있다가 보면 다시 기분이 다운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런 감정의 편차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간혹 느끼는 고요한 날이 있다.


간혹 고요한 날이 있다. 아무런 우울도 느껴지지 않고 비 온 뒤 하늘이 맑게 개는 것처럼 마음의 한 구석부터 볕이 들기 시작한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은 날이다.


이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마음이 공허해서 완전히 부서져버린 걸 뜻하는 게 아니다.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다. 무엇이라도 가슴에 품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단 걸 직감하는 아침이 있다.


이런 경우는 간혹 약의 영향도 있지만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이 하루정도 있을 때가 그렇다. 지속적인 치료가 지루해질 때쯤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자신의 병이 괜찮아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런 날이 있으면 갑자기 약을 끊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치료에 지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있으면 특히 임의로 약을 끊으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절대 그러지 말고 약은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천천히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약을 한 번에 줄이면 오히려 반동이라고 할 것이 심하게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울증의 완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병은 고요하게 영혼을 침식하고 마음을 좀먹어가는 병이기 때문에 오래된 병인 만큼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적 같이 한순간에 병이 치료되어 있을 수 있겠다.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리란 생각으로 병을 대하진 않는다. 좀 더 기술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문제임을 치료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도 언젠가 기분이 좋은 날이 하루 정도는 올 수 있다. 꼭 우울증을 겪지 않더라도 왜인지 모르게 그날따라 컨디션이 너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아팠던 만큼 오랫동안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병일지도 모른다.


심한 우울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그런 상태가 병이 물러난 일반인들이 느끼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하루일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꿈꾸고 바라왔던 날이 희망고문처럼 찾아오면 기대에 가득했던 마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괜찮아졌다고 오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된다. 당신은 오랫동안 아파왔고, 만성화된 아픔이 당신에게 병을 가져왔다. 고통이 만성화된 만큼 치료가 더딜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결국 이 병을 이겨내던지 견뎌내던지 흘려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 절망할 때도 있고, 지칠 때도 있다.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이 병은 나와 함께 살고 있고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젠 우울이 없으면 어떻게 나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때도 있다.


만성 우울증과 조울증. 의사 선생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 내가 받은 병명이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최소 5 ~ 6년은 지켜봐야 완치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였다. 그만큼 오래된 병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 시간만 견뎌내면 10년을 넘게 함께해온 이 원수 같은 동료와도 이제 안녕이라는 것이다.


참 오랜 시간을 우울과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이 아픔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세계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더 깊은 사유와 생각으로 사역에 뛰어들 수 있었다. 아픔이 있었기에 나는 사랑에 매달렸고, 사랑을 연구하며 신학도의 길을 걸었다.


언젠가는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저녁 약을 챙겨 먹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꾸준한 운동과 외부 활동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 나 같은 경우는 많이 호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혹은 잠복하면서 속으로는 썩고 있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거다. 포기하지 않는 거. 많은걸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생긴 병이었다. 이번엔 결코 포기하지 않음에서 이 아픔을 견디며, 때로는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 이 병을 흘려보내버리고 싶다.


내게 우울증이란 이겨내는 병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질병이다. 그대에게도 언젠가 그런 기적 같은 완치의 순간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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