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가 다녀간 세계에서 2
교회를 떠난 기독교인을 '가나안 교인'이라고 말한다. 이는 교계에서 현재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며, 현 코로나 시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익숙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종교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 떠나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런 가나안 교인을 만났다. 교회를 떠났지만 신앙이 있는 한 형제를 만나게 된 것이다.
"김선웅 형제님."
"형제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 것 같네요."
익숙하나 이젠 너무 멀어져버린 표현을 사용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 내 정체정과 위치를 말하고 우리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전도사님이 아니라 형님이라 불러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아마도 어느 교회 전도사를 교인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나는 그저 종교계에 종사하는 친근한 형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꼭 소모임하는 것 같네요. 형님을 만나면 뭔가 차분해지고, 사람이 경건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칭찬의 말이네요. 하하."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대화의 주도권이 넘어간듯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나를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아주 좋은 신호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요즘 팀사역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 모임을 갖는 시간이에요. 요즘은 코로나라 잘 못모이고 있긴하지만요."
"나중엔 저도 한번 꼭 불러주세요. 형님이 계신 곳이라면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내게는 정금보다 소중한 말이었다. 그는 교회를 떠났으나 인간으로서 남아있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은 아직 있었기 때문일까. 많은 가나안 교인들이 그렇게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가는 일이 어서 현실이 되었으면 했다.
"매주 그런 모임에 가야할까요?"
"아니요. 오고 싶을 때 오고 그렇지 않으면 안오셔도 됩니다."
"그건 참 마음에 들어요. 뭔가 매주 오라고 한다면 부담이 되는게 있더라고요."
교회를 떠난 사람들 중에서는 교회에 열심을 가지고 나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실망과 지침이 그들 밖으로 인도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임재함을 믿는다 말하고 싶었다.
"매주 다니지 않으면 저도 지옥에 가는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것이 요즘 그의 고민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신났지만 최대한 체통을 지켜야했다. 그래서 차분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내세의 신앙에 대해서 조금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건 또 새롭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람들은 하늘 본향이란 말을 사용하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할까 싶어요. 원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간다는 말보다 온다는 표현이 더 많았거든요. 우리가 살고있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임한다는 뜻이죠."
그가 흥미를 잃기전에 최대한 많은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세워 나가느냐.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종말이란 긴장 관계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어떤 팽팽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쉽게 풀어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정수가 되고 있는 말들은 분명히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까지 믿어온 천국과 지옥이라는 말은 틀렸다는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단지, 그것에만 초점을 맞춘건 제가 보기엔 오히려 성경적이지 못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군요."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성경이 초점을 맞추는건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느냐. 이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죽어서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고를 말하기 위해서 66권의 책이 존재하는건 아니라는 거죠."
"형님과 함께 있으면 왠지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더 공부해야죠."
나는 살아있는 말씀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종교인은 자신의 하늘에 있는 황금 궁전을 위해 그 본향이라 말하는 것을 위해 일생을 종교에 투자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가?하는 질문에 빠진 것이다. 내가 읽어왔던 책과 다른 책을 보고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항상 내가 질문을 받고 그의 그동안 궁금했던 점과 답답했던 것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종교계에 없는 종교인이 되어갔다.
종교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그의 돌아옴을 생각하며, 우리의 돌아감을 생각하면서 내가 갖게된 고민은 이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그리운 곳으로 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 그것은 진정 행복하고 사랑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품에서 살았던 우리는 품을 그리워하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나그네를 만났던 것 처럼. 나는 요즘도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있다. 그렇게 찾아가는 이. 만나러가는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다.